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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Dec 09. 2015

‘쩌는’ 사람에 관하여

사람의 노력과 열정이라는 것, 그것은 과연 어디서 올까? 순수함의 대명사 열정! 나는 이 단어를 매우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매일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러나 때로는 이 노력과 열정이라는 것이 마냥 순수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의한 동기로 보일 때가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쩌는’ 사람에 주목한다. 뭐, 비단 요즘뿐이겠는가?! 늘 그래 왔지만 특히 요즘 더 부각되는 쩌는 사람들… 예를 들어볼까? 요즘엔 전 국민이 가수 같다. 



슈퍼스타 K 6의 곽진언, 김필. 슈퍼스타 K 7의 케빈 오와 천단비. K팝 스타 5의 유제이까지… 이제 식상해질 법한 오디션임에도 불구하고 매년마다 재야의 고수들이 출몰한다. 뿐만 아니다. 이젠 요리도 쩌는 시대다. “남자가 어디 칠칠치 못하게 부엌을 들락거리느냐”는 볼멘소리는 이제 옛 이야기다. 이제 셰프는 곧 남성인 시대가 도래했고 그들이 몸소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예술이 되었다. 



작가, 혹은 프로게이머 같은 전문직도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현재는 프로를 동경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쩌는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 나도 그들을 보고 눈물을 여러 차례 흘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같은 동경이 나 스스로를 낮추고 열등감만 부추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컨대 



“남들은 좋은 글빨로 출판사와 계약해서 날아다니는데 왜 나는 그렇게 안 되지? 남들만큼 나도 내 자리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데 흔히 말하는 열정으로 휘감았는데 왜 안 될까?”  





그렇다. 내 얘기다. 내 글이 뛰어나단 생각은 없다. 허나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그 노력의 결실이 도대체… 도대체 언제 열매로 바뀔 것인가에 관한 쓰디쓴 의문이 계속될 때 ‘나도 쩔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의 풍토가 점점 빠르게 흐르면 흐를수록 진득함의 미학은 사라져 간다. 몇십 년씩 오롯이 한길만을 걸어가는 이에게 격려와 응원 대신, 우려와 한숨이 가득해져 가는 것이 나로 하여금 한숨짓게 한다.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가서야 사람 구실 하겠냐는 쩌는 사람을 동경하는 가치관이,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고 진득하게 롱런 하는 자세를 이기는 현상이 별로 좋지 않게 느껴지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물들었나 보다. 



열매가 없는 나무는 실패작이 아닌 뿌리와 줄기의 기반을 다지는 준비 기간임을 알아주는 세상은 이제 올 수 없는 걸까? 쩌는 사람이라 해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 모두 다 실패를 맛보았을 테고 그 상처가 깊고도 깊어 진한 고름 짜 봤을 텐데 



이런 말이 그저 희망을 주기 위한 포장이고, 위선이 아님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고, 또한 바라기는 내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인류 기업의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내 노래를 알아주는 이가 없고, 여전히 주방보조이며 만년 아마추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출판이 안 된다고 해서… 그래. 소위 쩔기는커녕 오히려 밑바닥이라 하여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부 소용없는 짓거리일까?



결코 아니리라. 밑바닥을 전전해도 열심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원석(原石)’이며 진짜배기다. 대중에겐 인정받지 못해도 누군가는 이미 당신의 헌신과 달음질에 감복해 “당신 쩔어요.”라고 할지 모른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그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이미 쩌는 자의 부류다. 



또한 듣지 못했다고 해도 당신은 포텐(Potential) 터질 준비가 되어 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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