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B급브리핑
Tears의 B급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인류가 창조된 이래부터 모두는 ‘자유’를 꿈꿔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습니다. 굳이 선택할 이유도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는 ‘무료의 권리’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런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랄 것도 없이 인간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하고 규제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선생님에게 사회에서는 아르바이트와 직장에서 갑이 될 수밖에 없는 상사들에게 결혼해서는 남편과 아내에게. 이처럼 사람들은 함께 살아야 할 존재이고 더불어 어울림을 원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통제하고 구속하는 이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 자유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까요? 여기 또 하나의 자유가 있습니다. 생육과 번성의 자유. 아니 성경에서 말하는 생육과 번성은 의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자손을 낳고 기르는 건 신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기도 합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잘 낳아 기르는 것. 좋은 부모가 되는 자격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미혼인 제게 부모라는 직함은 먼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굳이 부모의 역할을 체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분신과도 같은 어린 생명을 최대한 정성과 열의를 다해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 창조 이래부터 우리는 자녀 잉태의 자유를 갖는 축복을 누렸으며 오늘날 이 자유는 유효하지만 현대 의학이 발달한 지금은 이전에 누렸던 자유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낙태(落胎)
조금은 변형된 자유지요? 어쩔 수 없음. 사고. 실수 등 많은 이유로 행해집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앞서 이야기했던 지배당하거나 구속당하는 상황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본성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통제할 권리가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부모 곁에서 정착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요?
특히나 장애아의 낙태는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글쎄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가 장애가 있는 채로 태어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머리로는 끄덕일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생명은 신의 영역이고, 굉장히 성(聖)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장애의 유무가 한 생명의 생사를 판가름한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 땅의 장애인 자녀를 두신 모든 부모님은 그 누구도 나의 아들 딸이 장애가 있기를 바란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정성껏 낳아 기르신 것은 의학의 발전이 더뎌 그 사실을 몰라서가 아닐 겁니다. ‘그저 내 새끼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길러주셨겠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가 이렇게 살아남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감사하게만 여겨집니다.
허락되지 말아야 할 자유
낙태는 잉태와 동시에 자유의 영역이지만, 생명의 가치ㅡ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면, 더구나 그 이유가 신체적 장애의 의한 것이라면 결코 허락되지 말아야 할 자유 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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