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만질 수 있는 추억이 내겐 남았다

과연…

by LOVEOFTEARS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나의 모든 것에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맹수를 마주한 초식동물처럼. 또는 개구리를 만난 파리처럼 말이다. 그냥 닫아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들키면 안 된다는 법도 없는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위축되었다는 건 내 맘을 어지간히 들키기 싫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자료처럼 보인다.



더운 여름날 메마른 땅에서 물을 찾는 애절함이 내겐 있었고,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내일의 밝은 빛을 기다리는 아둔함도 내겐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남들 다 하는 듯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제삼자가 보기엔 텅텅 비어 보여도 내게는 그저 커다란 영롱함으로 다가오는 것.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내겐 그런 영광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 아직 나에겐 그와 같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나 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잠시 잠깐씩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을 원망하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는 아닙니까?’…



이런 의문이 계속 남았기 때문이다.



사랑 이야기다. 참 지겹다. 또 이 이야기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마음엔 충실했다. 그 사람을 내 심장 안으로 가져오고 나서는… 다시 말해 그 사람을 매 순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부터는 지독히도 충실했다. 그리고 그 충실함이 빼곡하게 차서 더 이상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내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가 참 오래 걸린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 역시도 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온전히 내 마음을 그 사람에게 쏟아낼 수 있을 때 사랑을 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경히 여기지 않는 최선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무모함을 머릿속이나 감정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받아들였기에 비로소 의미를 깨닫는 지혜도 얻었다.



‘잊음’이란 단어는 내겐 너무 생경하다. 하지만 기억이란 건 늘 그렇듯.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청명한 하늘 속 부서지는 구름 조각처럼 늘 희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희미한 기억 조각을 떠올리면 조금은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금지된 일탈도 아닌데…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스틸 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금지된 일탈도 아닌데 난 왜 내 사랑에 있어 위축되어 있었을까? 소리 없이 바람결에 실려 찾아온 중년의 사랑도 어느 영화에선 혈기 왕성한 젊은 남녀의 사랑보다 더 치열하던데 난 어이해 아무런 명목으로도 금기하지 못했을 사랑을 앞에 두고 숨죽여야 했는가?



기억은 희미하다고 했었나? 근데 사실 거짓이다.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나는 현재의 모습처럼 과거를 생생히 그려내고 그때의 일을 몇십 장의 글로 써낼 만큼의 ‘만질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할 만한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年 作>의 스틸 컷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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