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 칼럼 ⑤
의심할 여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디펜딩 챔피언. 브록 레스너와 지난 레슬매니아 31에서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걸고 상대한 선수. 주먹 하나로 링 위를 평정한 사나이. 그는 로먼 레인즈다. 오늘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 로먼은 ‘더 실드(The Shield’)의 주역
로먼 레인즈는 다들 아는 것처럼 ‘더 실드(The Shield’)의 멤버였다. 얼굴에 악바리 근성이 가득했던 딘 앰브로즈, 그리고 보면 볼수록 ‘성인급 슈퍼스타’ 에지를 꼭 닮은 듯한 기회주의자 세스 롤린스, 그리고 묵직한 한 방이 매력적일 것 같은 강인한 인상의 로먼 레인즈. 이 셋은 저마다의 뛰어난 개성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그런 구성원이 모인 스테이블은 마치 알이 꽉 찬 암케처럼 실했다. 리더인 딘의 계획 실행능력, 세스의 지략, 파워 넘치는 로먼의 활약은 그야말로 언스타퍼블이었다. 2012년 서바이버 시리즈, WWE 챔피언십이 걸린 3자 간 경기에서 그들은 난데없이 경기장에 난입 해 선수들을 초토화시켰다. 당시에 경기를 치르던 CM 펑크, 존 시나, 라이백 모두는 빅 푸시를 받던 상황이었지만 예고 없는 이방인의 난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실드가 힘을 합쳐 경기를 하고 있었던 모두에게 트리플 파워밤을 날릴 때는 왠지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 칭하길, ‘Hounds of Justice(정의의 사냥개)’라 했다. 닉네임에 걸맞게 그들은 닥치는 대로 선수들에게 펀치를 날렸고 부상을 입혔다. 아무런 인과 관계없는 선수들까지 정의구현이란 명목으로 공격당했고, 그렇게 매번 그들의 손에 의해 정의가 실현(?)되었다.
실드의 멤버 모두는 앞서 말했듯 누구 하나 뒤처지는 멤버는 없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실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로먼이었다. 경기 내적이나 외적으로 모든 마무리는 그의 손을 거쳐 끝나는 일이 빈번했으며, 팬들 역시 그의 파워풀함을 좋아했다. 그의 힘 분배 능력은 빌 골드버그나 브록 레스너와 같은 파워 하우스 선수 유형에선 볼 수 없던 특이한 것이었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뭔가 달랐다. 필력이 달려서 딱 잡아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음을 유념 부탁드린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는가? 간 짜장과 일반 짜장의 차이. 아까부터 음식 비유해서 죄송하다. 어쨌든 본인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이것이었다. 사모아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 사람들의 챔피언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 실드의 해체로 메인 이벤터를 꿈꾸다
실드라는 거대한 스테이블은 성공을 이뤘다. 근 2년 간 선역과 악역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해 온 실드의 활약은 팬들로 하여금 염증이 아니라 더욱더 날개를 폈으면 하는 바람도 들게 했다. 실드의 인기를 대적할 스테이블로는 ‘와이어트 패밀리(Wyatt Family)’가 있었고, 그 두 스테이블 간의 대립도 꿀맛 같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WWE의 수뇌부는 실드를 유지하는 방향보다 싱글 레슬러로서의 길을 가기 원했다. 선뜻 이해가 안 가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어디 시청자가 힘이 있나? 실드라는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한 방패 같은 팀은 해체되고 그 과정의 총대를 멘 사람은 딘이 아니라 놀랍게도 세스였다. 아까도 본인이 세스와 에지가 이미지 적인 면에서 비교된다고 했는데 일단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세스는 권력의 맛을 보기 위해 팀을 배신하고 트리플 H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현재까지 어쏘리티의 일원이다.
딘의 지금 모습은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스티브 오스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선역인 듯, 선역 아닌, 선역 같은 너~) 못 말리는 괴짜. 그러나 한 번 건드리면 못 헤어 나올 늪을 만들어 놓고 차분히 기다리는 맹수와 같은 그런.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 로먼을 볼까? 로먼은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다. 아니 영웅은 존이 있으니 불사조라고 해 두자. 그는 쉬 넘어지지도 않고, 설사 넘어진다 해도 금세 일어난다. 마치 생전에 폴 베어러가 언더테이커 쪽으로 단지를 향해 들면 언제 그랬냐는 고통스러웠냐는 듯 힘차게 싯 업(Sit Up) 하는 것처럼. 그래서 늘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팬들은 그에게서 강한 것만을 요구한 게 아니었다. 실드의 멤버로 있던 시절에 보았던 강렬한 모습에는 딘의 처절함과 세스의 얄미울 정도로 치밀한 면이 부각되었다. 때문에 그간에 보인 로먼의 힘은 넘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배어 있었다. 그러나 싱글 레슬러로 전향한 후 그의 힘은 지나치게 부각되었고, 그렇다 보니 그는 레슬러가 아닌 파이터의 모습으로 빙의된 듯했다. 일방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어떤 격투에서건 매우 인상적인 시각을 남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포테인먼트가 가미된 프로레슬링이다. 프로레슬링에서 양 선수의 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람이다. 매치가 일방적인 흐름이 아닌 용호상박의 구도로 흐름으로써 매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야 하는 것이 팬의 입장이다.
그런데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로먼의 경우 지금은 당해도 해머링 몇 번, 사모안 드랍, 슈퍼맨 펀치, 스피어 순으로 이어지는 변치 않는 승리 공식이 존재하기에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팬들은 로먼에게 주는 빅 푸시를 걱정했다. 단조로운 운영과 부족한 마이크웍 등은 그가 메인으로 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음을 우려해서다.
■ 거스를 수 없는 빈스의 신임
많은 이들이 우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로먼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라갔다. 바로 빈스 맥맨의 신임 때문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빈스는 체격이 건장하거나 키가 큰 이른바 빅 맨(Big Man)을 좋아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엔 로먼의 급진적 푸시가 대니얼 브라이언의 부재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대니얼은 익스트림 룰스 2014에서 케인을 상대로 챔피언십 방어 경기를 치르고 난 뒤 오랜 시간 공석이었고, 레스너를 상대로 경기를 치를 상대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로열럼블 2015의 우승자로 일찍이 로먼이 낙점된 것을 알고, 팬들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발 아니길 빌었다. 그러나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대니얼 브라이언이 어이없게도 로열럼블 매치 초반에 나와 중반에 아웃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얼마 후 울린 로먼의 엔트렌스 뮤직을 듣고 난 뒤, 팬들은 증오 섞인 야유와 시위하는 듯한 진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로열럼블 쇼가 마무리될 무렵, 더 락의 등장에도 팬들은 시큰둥했다. 이것이 빈스가 로먼을 무한 신임한 결과이다. 결국 씁쓸한 결정이 되고 만 셈이다.
■ 우여곡절 끝에 열린 두 파워하우스의 대결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열린 두 파워하우스(로먼 레인즈 vs 브록 레스너)의 대결은 당초 내 예상보다는 멋지게 마무리되었지만 예정과는 달리 끝나서 레인즈가 많이 아쉬운 형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레슬매니아가 열리기 전 여러 번의 레슬링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항상 이 순간을 꿈꿔왔고, 이제 현실로 만들 때가 왔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먼 본인의 바람대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제는 WWE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단체임을 깨닫고, 그릇 된 방향의 푸시는 삼가 주었으면 한다. 로먼은 지금의 단조로운 스타일을 벗어나 경기 스타일을 조금 바꾸고, 스피치 실력을 키우면, 더 나은 퍼포머가 될 것으로 믿는다. 무조건적인 강한 어조는 반감을 사게 마련이니까….
■ 마치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로먼이 겪고 있는 정체 현상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원래 높은 곳 올라가기가 어렵지, 한 번 올라가서 그 공기를 맛본 사람은 내려오기 싫게 마련인데.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때를 만나 로먼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그 날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모두의 챔피언이 되기를 바란다.
Fighting Joe! You Can Do it.
※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드는 생각 하나.
“뭐? 로먼 엠파이어를 또 건립하자고?” “우리 잭 라이더는 어쩌고?” “우리 예스맨은? 예스맨. 돌아와 줘요. 제발.” “미즈도우 푸시 좀.” “우리 딘도 이제 제대로 된 화 좀 내 보자.” “(챈트) 위 원트 네빌!” 등의 예상 댓글이 계속 떠나지 않아 죽을 뻔했습니다. 크크
이 글은 2015년 4월 20일에 게재된 칼럼으로 PgR21.com, Wmania.net, 네이버 FTWM 카페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