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B급브리핑
Tears의 B급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고즈넉한 시골의 새벽. 사람들은 간밤에 격한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다 내려놓기 위해 잠을 청하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코골이 소리는 시끄럽긴 하지만 사실 편안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늘 이 평화를 시샘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날이 흐리건 맑건 그것에 상관없이 시계의 역할을 자처하는… 눈치채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닭’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닭처럼 부지런한 동물도 없지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루의 시작을, 그것도 매일 알려주니까요. 이쯤 되면 꼭 필요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닭은 때로 과한 충성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빈축을 살 때도 있습니다. ‘닭대가리’라는 과한 표현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 시야를 넓혀보면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가 시간에 상관없이 즐겨먹는다는 먹거리가 다름 아닌 치킨이기 때문이죠. 후라이드와 양념치킨만이 존재하던 단조로운 메뉴의 시대는 가고 파닭과 갈릭치킨 그리고 불닭까지… 치킨의 무한 변신은 대세와 고급을 넘나들어 대중화를 이뤄냈습니다. 오죽하면 한 치킨집의 상호가 유명 브랜드를 패러디한 ‘루이뷔통 닭’일까요. 이런 흐름이다 보니 치킨은 이제 사랑받는 걸 넘어 신(神)… 즉, 치느님으로 불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 개인적으론 이런 표현을 굉장히 싫어합니다만, 아무튼 이런 상황이면 출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닭의 입장에서는 죽음마저도 슬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이렇듯, 같은 닭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선 천대받고, 다른 한쪽에선 귀하다 못해 신(神)이 되어 버리는 이상 현상. 그래서 제가 고른 오늘 (4월 26일)의 키워드 ‘닭대가리와 치느님’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닙니다. 치킨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귀천의 엇갈림은 늘 있어왔으니까요. 그러나 특별히 제가 치킨의 귀천에 주목한 것은 그 정도가 치킨의 것과 맞먹는 것이 또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장애(障碍)’입니다.
세상 귀퉁이에선 장애(障碍)가 아닌 ‘장애(長愛)’, 그러니까 오랫동안 지켜보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보자는 움직임과 있는 그대로 대하자는 움직임이 거대하게 메아리치고 있지만 실상은 아직도 무시와 경멸이 통행되는 그런 상황. 겉으론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아닌 것처럼 대하고, 아무렇지 않게 자존을 운운하며 껍질만 있는 격려를 하고 있지만, 사랑은 고사하고 과연 장애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영화 <말아톤> 속 주인공인 초원과, 그리고 드라마 <굿 닥터>의 주인공 시온의 경우와 같이 모두에겐 아직도 장애인이란 특출 나거나 혹은 바보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건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시작으로 월말까지 지속되는 이른바 장애인 주간에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앵커 이창훈 씨,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 시인이자 작가인 송명희 씨,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씨,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호킹 박사, 행복 전도사 닉 부이치치 씨, 작가 겸 사회 사업가였던 故 헬렌 켈러 여사까지. 장애인계의 한 획을 그으셨고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나신 분들입니다. 본받아야 할 점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본인들께선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성공하신 분들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장애인 하면, 이렇듯 성공한 이들에겐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차가운 냉소를 보낸 적은 없는지… 어쩌면 이것이 현재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심정적으로 진한 자괴감을 느낄 이 땅에 많은 장애인들은 그 억울함과 분노를 어디에 풀어야 할까요?
성대를 잘못 써 졸지에 닭대가리가 되어버린 붉은 벼슬의 새 한 마리는 쏘아붙이는 사람들의 핀잔을 피해 어디론가 날아 가버리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말아톤, 2005年 作>의 포스터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KBS 드라마 <굿 닥터> 포스터이며 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역시 KBS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