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견 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Sep 04. 2015

펜을 이리저리 굴림에 대하여

나의 온전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타인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넌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다. 참 간단한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오묘한 것이 담긴 것 같은 질문이다. 소위 ‘명필(名筆)’혹은 ‘달필(達筆)’인 분들은 선뜻 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같이 초짜의 실력을 가진 이는 이 같은 질문에 몇 초간은 침묵하게 된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주 쓰긴 하는데 그야말로 낙서장에 끼적이는 수준이고, 그렇다 보니 대외적으로 떳떳하게 보일 필력은 아니고 혹시 누군가에게 평가라도 받는 날엔 날 선 자격지심이 발동해 정글 한 가운데서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사나운 맹수라도 되는 듯이 성질을 낸다. 괜한 어깃장도 추가요ㅡ



이렇듯 성질 괴팍하기 그지없는 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언가 멋진 이유를 대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멋진 답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유명해지기 위해서’다. 



사실 난 유명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긴 하다. 물론 그 누가 세간의 유명세를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난 연예인 지망생도 아니고 정계 진출을 원하는 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더 정확히 말하면 유명해지길 원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고 ‘나 자신을 알리고자 한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 그게 내 글쓰기의 최종 목적지다. 글을 통해 이루려는 바는 다른 것들도 여럿 존재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을 알리는 것부터 순탄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상과 많이 동떨어졌다. 그건 분명 내가 원하는 흐름은 아니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나란 존재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원치 않았으나 그렇게 살아야 했다. 나는 세상과 조율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신체의 다름을 극복해 내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다. 나는 햇살 한 가운데 서서 뜀박질하기를 좋아하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영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모든 인류는 내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람을 좋아하며 아낀다. 또 여건만 주어진다면 많은 이들과 마음을 교류하며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쉽게 말해 내 사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과정 자체가 어렵다. 사람들은 나를 한 수 아래로 본다. 분명하다. 나는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보아 그들에 비해 한 수 아래인 것이 맞다. 그렇다면 그들의 안목을 내가 과연 무시하는 걸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내 말은 그들이 나를 생각 못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었다는 얘기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아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긴 하더라도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이 다른데 어찌해 타인의 신체적 다름을 대하는 태도는 이다지도 같은지 모르겠다. 마치 판에 찍은 것 같다. 소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능의 터널을 건너고 있을 때 조금이나마 물꼬를 터 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글이었다. 글은 이런저런 제약도 없고 시공의 불가능도 없애준다. 나의 신체를 떠올리지 않고 오롯이 내 심장만을 봐 준 것, 아니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나의 온전한 가치를 알리는 것. 설령 그것이 속된 말로 ‘똘끼’라 할지라도 그 자체의 나를 알리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였고, 그래서 난 오늘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그 과제를 마저 하기 위해 이리저리 펜을 굴리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세상에서 숨 쉬는 것조차 감당치 못하겠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