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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Sep 05. 2015

난 세상에서 숨 쉬는 것조차 감당치 못하겠노라

보통의 존재가 아닌 이가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에게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 따분하다며 차라리 잘 풀리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고 언제나 쳇바퀴 도는 상황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안쓰럽기도 해서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나는 사실 숨 쉬는 것도 여의치 않더라. 다른 이들처럼 매일 똑같은 업무를 진행하고, 같은 사람을 만나는 그런 무료한 십자가를 감당하는 건 고사하고 그저 내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일이더라. 



사람. 그 역할의 처음은 ‘숨’이다. 그 숨결이 유지되어야만 육신이 제대로 구실 한다. 그러나 나는 숨은 쉬고 있으되 제대로 된 육신의 구실은 못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구실’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니 성장해서는 부모님께 받은 것을 돌려드려야 한다. 물론 아무리 자식이 잘 해봐야 어떻게 부모님의 사랑을 감당하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값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나 할 도리를 잘하면 된다.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특별히 해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앞길을 잘 헤쳐 나가면 그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여유가 생길 수도 있고, 부모님께로 나의 시야를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또 때가 되면 연애와 결혼도 하는 그런 일상의 삶. 그게 결코 쉽지 않으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부모님을 향한 효도다. 


놀이기구는 놀이기구의 구실을 해야 쓸모가 있다. Courtesy of Gratisography



사람 구실이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본질은 나를 낳아 준 부모님의 정성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벌써 서른의 중턱이 내일 모레이나 나는 아직도 유아기의 삶을 살고 있다. 아침이 되면 깊은 밤 내내 뉘었던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조차 도움받아야 한다. 쌀밥을 내 목구멍에 넣는 것은 어찌하든지 가능하지만 식탁 위에 정성스레 차려진 찬을 밥에 얹어 놓는 것 역시 타인의 몫이다.



나는 이렇듯 생의 98% 이상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그에 따른 깊은 한숨은 매일 재생성 되지만 많이 사그라진 듯 담담하게 살아간다. 쥐뿔 뭐가 없더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사는 그것이야 말로 나와 함께하는 공동체 모두에게 돌려 줄 단 하나의 배려이니까 



과거에는 보통의 나를 꿈꿨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존재보다 훨씬 더 보통 같은 나이니까….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여전히 나는 보통의 존재를 꿈꾸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서서히 현실을 인정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맘먹고 산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란 녀석의 보통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날 아는 모든 사람이 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시원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Courtesy of Gratisography  



이 모든 것의 초연. 그것이 세상이 내게 바라는 바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겨내는 중이다. 그 과정이 평생 걸릴지는 몰라도 많이 이겨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제는 좀 타인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필해야 할, 그러니까 사람 구실해야 할 시기에 아직도 내 안위를 걱정해야 하고 그 때문에 다른 이들까지 염려를 끼쳐야 할 때는 아직도 많이 작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난 세상에서 숨 쉬는 것조차 감당치 못하겠노라.”  



이런 사람도 있다.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는 다른 이를 가르치려는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아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실은 그런 의도가 아니다. 이 땅의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이미 내가 가지 않았고 가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다. 평범하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좋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가 소요되든, 이미 ‘하고 있음’에 특별하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집밥 공동체’와 기타 여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세상에 넓게 퍼져 있는 ‘무차별적 성공주의’가 그대를 꾄다 하더라도 부디 속지 말라. 이미 그대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났으니….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끝으로 바라는 것은 ‘내 어려운 이야기’가 부디 모두에게 거북하지 않았기를….   

  


본문 이미지는 gratisograph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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