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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ug 02. 2016

휠체어, 사춘기 그리고 현재

꼭 16년 전 이 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다른 사람보다 1년 늦었던 제 고교시절 시작은 청춘의 꽃이지만 한편으론 질병 같이 느껴지기도 했던 이른바 사춘기(思春期)의 절정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매일매일이 진지했고, 그 어느 철학가보다도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그때의 제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춘기란 단어의 의미처럼 지독히도 봄을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객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반항도 해 보고, 떨어지는 잎새 하나에도 눈물 흘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 찾아온 ‘공허’에게 마음을 잠식당해 버려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제가 늘 어두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 있으며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지 같은 고민은 있었으나 한편에서는 친구들과의 우정도, 허기진 배를 채워줄 밥 한술도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도, 옮겨도 질리지 않는 간이매점에서의 값싼 먹을거리도… 저에겐 즐거움이었지요.  



하지만 이것들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커다란 위로가 또 한 번 제게 찾아왔습니다. 바로 전동휠체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교생 중 몇 안 되는 인원만이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꼭 필요하지만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던 전동휠체어의 위용은 그 비싼 값만큼이나 대단해 보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부러움의 사로잡혀 침만 흘리고 있을 때 비로소 기회가 온 것이죠.



당시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학교 차원에서 전동휠체어가 반드시 필요한 학생을 선발하고 추려서 소수 인원에게나마 휠체어를 보급하려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 제가 포함됐던 것입니다. 내 몸에 꼭 맞는 휠체어를 라이딩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었는지 상상이 가시는지요.



전동 휠체어가 있기 전까지 저는 철저히 타인의 도움에 의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동 휠체어를 타게 된 순간부터는 100% 달라졌죠. 흔한 말로 날아다녔습니다. 이전 같으면 1m 가기도 어려웠던 사람이 교무실을 찾아가고, 친구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게 됐으니 정말 기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그와 더불어 본래 친화적인 제 성격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고요.



저는 가까이 지내면 지낼수록 마음 또한 가까워진다는 정설을 믿습니다. 이는 제가 실제로 체험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 삶은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흘러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저를 보면 고교 시절 이후로부터는 내내 전동휠체어가 있어 왔으며, 당연한 이야기겠습니다만 학생이던 당시보다 인맥은 현저히 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험과 그에 따른 관계의 노하우는 쌓였지만 사회에서의 제 관계가 이전보다 퇴보한 것은 아닐지 고민됩니다.



전동휠체어가 자리할 곳이 많지 않아 수동휠체어를 택해야 할 일이 잦아졌고 그로 인해 제 안에 내재된 적극성과 활기의 표출이 어려워졌다는 것.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장애인 동료들당장이라도 전동 휠체어로 갈아 타라고 종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말한다면 ‘뭣이 중허냐’는 근래 유행하는 말로 응수하고 싶습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휠체어의 종류가 아닐 테니까요.



너무 바빠 만남을 가질 시간마저 없다는 사람들… 그래서 연애마저도 가볍게 하길 원하는 흐름 가운데서 더구나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장애인과의 만남은 어떨지 충분히 짐작되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런 풍토 때문에 현재의 이 흐름을 그저 용인하기만 한다면, 정말 당연해서 지향해야만 하는 ‘함께 사는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비단 저 개인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추구해야 할 ‘함께 사는 인생’의 근간을 부패케 하는 편견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버젓이 유지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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