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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ug 06. 2016

두 잔의 커피, 냉온(冷溫) 그리고

전하고 싶은 한 마디, 파이팅



이전 글을 통해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원두의 질(質)을 감별하고, 맛을 구분하는 절대 미각은 제게 없지만 물보다도 사랑하는 음료가 있다면 그게 바로 커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사람인 줄 아실 수도 있는데 실은 카페에 가서도 늘 달콤한 것만 찾고, 보통 때에는 스틱 커피 하나에 룰루랄라 하는 단순한 녀석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먹는 커피 한 잔은 제 몸을 깨웁니다. 찌뿌듯한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힘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는 원래 커피를 맥시멈 두 잔 밖에 마시지 않습니다. 보통은 점심의 한 잔이 제 일일 커피의 양이지요. 이유는 혹여 잠을 못 잘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인데 실은 커피 때문에 잠 못 이룬 일은 거의 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덕분에 밝은 주말 아침 시간을 보냈지만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과 마주하고 있으려니 도저히 견딜 엄두가 안 났습니다. 해서 당이 떨어졌다는 핑계 김에 두 번째 잔을 마주하려는데 잠시 멈칫하게 됐습니다.



‘이미 난 열로 달궈져 있고, 수없는 땀방울로 멱을 감았는데 또다시 온기(溫氣) 서린 커피를 마신다?’ 그것은 무모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해서 이번엔 아이스커피로 대체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전 냉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달콤한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냉커피를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원해서 마시기에는 수월하지만 그 대신 빨리 없어지기 때문인데요. 이유가 참 우습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마시려고 하면 없어진달까요? 달콤하게 취해 후루룩 몇 모금하면 금세 사라집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헛헛합니다. 하루에 한 잔 마시는 때가 대부분이니 더욱 그렇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제게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대신 최대한 천천히 마셨더랬죠. 다 마시고 나니 이전과는 달리 허전함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생각이 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요. 모닝커피 탓일 수도 있어요.)



그 생각이라는 게 무엇이었느냐면



“지금은 더워서 여름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훗날엔 이 풍경도 다시 그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내일이면 입추(立秋)라지만 가을의 이름이 무색해지게 더위는 계속될 거랍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센 더위도 말복(末伏)이 지나면 한 풀 꺾이고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요. 그러나 앎과 실제는 언제나 그렇듯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속에 한기(寒氣)가 찾아오면, 다시 오늘의 더위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겠죠. 계절의 흐름을 따라 커피의 온도도 달라지듯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사람의 맘이 간사하다고 표현하던데 그리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늘은 인생이 찬란해 보여도 내일은 나락인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사람은 고급 스프링을 맘속에 지니고 살아가니까요. 세상은 내게 변하라고 종용하는데 이상하게도 지인들은 ‘너만은 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변화에 휘말리는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갈 곳을 잃어갑니다. 상황과 환경에 맞춰 옷을 갈아입다 보니 정작 ‘내 옷’은 어디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러면 조금 난감합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말이죠.



하지만 바라기는 그 변화, 그리고 그 변화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진 자신을 나무라지 마셨으면 합니다. 잘 적응했기 때문이거든요. 오히려 그때는 토닥거려 주세요.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제 자신도 때로 제 옷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있거든요.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맞닥뜨려야만 한다면 모두가 제로인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위로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어디인 줄 모르겠고, 정신을 차려보니 당장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그냥 걸어가세요. 처음부터 다시 가십시다.



저 또한 내일은 제 욕구의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네요. 제가 앞서 커피 이야기를 왜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매주일마다 금수(禁水), 즉 물을 먹지 않고 있는데요. 비단 커피뿐 아니라 물 종류 전체를 먹지 않습니다. 짐작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 이건 화장실을 조금이라도 덜 가려는 조치입니다. 교회에 있는 동안 되도록 가지 않으려고요.



도와줄 인원이 없느냐고요? 아뇨, 있어요. 이른바 ‘숙달된 조교’는 많지 않지만요. 그러나 그들에게조차 되도록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제 스스로 도움에 대한 감사를 망각하고 당연한 줄 알까 봐 그렇습니다. 또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쳐도 그들 역시 힘들어요. 쉼이 필요해요.



화장실 가는 거… 어찌 보면 작지만 이런 것 하나라도 덜어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교회 형들과 동생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일부입니다. 비록 정말 작은 일이기에 생색내기에도 부끄럽습니다만…



몰라도 괜찮아요. 제가 뿌듯하니까요. 그거면 됐죠. 뭐. 



이것 보세요. 저도 매주 다른 옷으로 갈아입잖아요. 우리 삶엔 변화가 늘 있어요. 단지 그 과정 속에 악한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 변화는 권장되어져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 여러분, 커피의 온도차로 삶을 논하는 것이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힘내십시오.



파이팅!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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