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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Sep 08. 2015

‘장애인’, ‘장애우’ 그게 중요하지 않다

더 큰 것을 두고 고민해야…

나는 고정적으로 모 인터넷 장애인 신문에 꾸준히 글을 써왔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외부 기고자로, 2013년에는 연간 칼럼니스트로 일했고, 2014년부터는 다시 기고자의 신분으로써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법한 이야기이지만 난 그다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열심히 썼고, 또한 애정을 기울였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그곳에서 기사 하나를 접했다. 또 다른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에 대한 기사였는데 그 내용은 ‘우리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장애우라는 호칭 대신 장애인이란 호칭을 사용하자’는 취지였다. 캠페인의 상세 내용 언급은 자제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기사를 보고 화가 많이 났다. 아직도 지속되나 해서 말이다. 



물론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예컨대 ‘여교사’, ‘변호인’ 등의 호칭이 존재하듯 장애인을 친구로 부르는 대신 사람으로 생각하고 부르자는 주장으로, ‘여교사우’, ‘변호우’ 같은 호칭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도 보았다. 이 같은 말을 듣고, 친구라는 표현이 자칫 장애인을 동정의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 또한 했었다.   



장애인과 장애우의 호칭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모두가 알다시피 장애인은 더 오래전엔 병신(病身)이라고 불렸고, 그 후엔 장애자(障碍者)라고 불렸다. ‘놈 자(者)’ 자라는 이유 때문에 얼마 못가 장애인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장애우라는 호칭은 언제부터 나타나게 되었을까? 장애우란 말이 대외적으로 사용된 것은 KBS 캠페인이 시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자 그대로 장애인을 어려운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친구처럼 생각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장애우라는 표현은 장애인을 무시하는 다른 표현으로 각인되었고, 소리 소문 없이 지워졌다. 다른 장애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이 같은 캠페인을 벌인다는 것이 좀 부끄럽다. 그럴 수도 있다. 친구라는 표현이 여느 주장처럼,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 말속에 무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호칭만 바꾼다고 장애인의 위상이 격상되는가? 장애인들이 사시사철을 막론하고 집회를 여는 것. 그 이유는 뭔가?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있는 그대로가 되기 위해 하는 행동 아닌가? 



사소한 논쟁보다 선행 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Courtesy of Pixabay



호칭에 대한 논쟁보다 더 시급한 권리들을 찾아야 한다.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동에 제약이 없어야 하며, 기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복지정책의 수정이 필요하다. 그것에 비하면 호칭 논란은 아무것도 아니다. 호칭 논란이 있을 그 시기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장애인은 하대의 대상이었다. 자격지심이 아니라 사실이다. 



어차피 장애인으로 불리나 장애우로 불리나 무시와 낯섦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차라리 친구라고 불리면서 거리감을 아주 약간이라도 줄이는 쪽을 택하겠다. 호칭이 어떠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장애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세상에 대항하여,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지….         



이 글을 쓰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커버와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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