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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Dec 01. 2016

언 사탕과 녹은 초콜릿

부모님과 자식 간을 생각해 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의 양대 산맥, 사탕과 초콜릿



두 군것질 거리 속에 함유된 성분은 다르지만 사탕과 초콜릿 모두 달콤함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최고의 요소겠습니다만 개성이 참 다른지라 무엇이 더 좋다거나 맛있다고 단언하지 못하겠습니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탕과 초콜릿. 이 간식 두 가지가 흔히 상상 가능한 것처럼의 상태나 모양대로 있지 않고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예를 들면 꽁꽁 언 사탕녹은 초콜릿이라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먹는 데는 아무 문제없지 않나?’



그렇습니다. 문제없을 수도 있죠. 



사탕이라고 꼭 깨물어 먹으란 법이 없으니 차가움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빨아먹어도 되고, 정히 깨물어 먹어야 한다면 실온에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서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녹아버린 초콜릿의 경우라면 사탕의 경우와 반대로 약간 얼려서 적당히 굳혀지면 그때 먹으면 되겠죠.  



그러나 만일 우리가 늘 먹던 방법대로, 그러니까 원형의 모습대로만 이것들을 먹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면 추측건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먹지 못할 겁니다. 그대로 먹어본다면서 강행한다면 그 모습은 굉장히 흉하겠죠? 



이런 억지 발상을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부모님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꽁꽁 언 사탕과 녹은 초콜릿’의 입장이 혹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특히나 자식의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 생각에 몰입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부터 최고의 서비스를 받습니다. 부모라는 무거운 감투 덕에 한 번도 엄마 아빠가 되지 못했던 존재가 제대로 된 예습이나 가르침을 받은 적 없이도 최선을 다합니다. 



단 한순간조차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무한책임의 짐을 내려놓을 수도,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맘 한편에서 쏟아지는 눈물과 한숨 한 줌이 행여 자식들에게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하죠. 



그러면서도 부모는 만화에나 나올법한 천하무적 캐릭터가 돼야 합니다. 물론 부모 또한 세상의 피조물이며, 여느 존재와 같이 약할 수밖에 없기에 조금의 ‘연기’가 필요하지만요. 



영화 촬영에는 ‘컷’하고 외치는 감독의 호쾌한 구령과 멋들어진 싸인이라도 있지, 실제 삶에서는 이마저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엇나가기만 합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 거립니다. 그렇게나 많이 사랑을 줬음에도 말이죠. 



그 못난 모습을 봐주길 원하기라도 하듯이 자식들은 때로는 꽁꽁 언 사탕처럼, 때로는 녹은 초콜릿처럼 지나치게 뻣뻣하거나 흐물거립니다. 그러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어루만져 줍니다. 마치 사탕과 초콜릿을 위한 조치처럼요.



도대체 언제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이름 석 자만으로도 믿음직한 존재가 되고 또한 의지해도 좋을 사람으로 남을까요? 



사실 이 고민은 인류 최대의 난제이며,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런 현실이 가능한 길이 있다고 해도 저는 아직 갈 길이 아주 멉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전히 묵직한 기운이 제 몸을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우려야 지울 수가 없는 늦은 오후의 한때입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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