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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un 13. 2017

미스터 T, 꼽쓸과 빙구 그리고…



저에게는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 녀석 이름은 T입니다.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도 아니고, 만나 온 세월이 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지인 중에서는 우주 최강의 친구이기도 하죠.



사실은 제가 입니다. 그러나 형 노릇 한 번 한적 없고, 갚을 수도 없는 도움의 손길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받고 있으니 친구로 지내야 마땅합니다. 왜 그렇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문재인 현 대통령과 친구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셨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1. T는 저와 죽이 착착 맞습니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T와 저는 성격이나 성향이 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는 저를 잘 받아주지요. 아마 참 힘들 겁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요. 혹자는 관계는 둘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 그 친구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정말 잘 하는 게 없어요, 다 T 덕분이죠. 인내를 잘해주기 때문에 당연히 소통도 잘 됩니다. 진중한 이야기든 가벼운 이야기든 다 잘 통합니다. 그의 경청이 한몫합니다.



2.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상황이 맞지 않으면 만나기 힘든 날도 많지만 그래도 마음이 있으면 멀어지지 않듯이 일상이 바쁜 그이지만 되도록 함께하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배가 고프면 같이 먹고,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동행합니다. 지하철 라이딩을 즐기는 둘은 되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동이 용이한 곳을 찾아가곤 합니다. 허나 필요하다면 헌신 역시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한 번은 지하철로 이동 중에 어느 아주머니께서 둘의 대화가 굉장히 즐거워 보이셨나 봅니다. 실제로 즐겁기도 했고요. 즐거운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으면 제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 데시벨이 상승하는 터라 제 잘못도 있겠습니다마는 여하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T 옆으로 오신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



“총각. (저를 가리키며) 말은 잘 하네.”



제가 말은 잘 하거든요. 입만 살았지요. 분명히 귓속말인데 정말 잘 들렸거든요. 그 순간 나지막이 T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왜 그러시죠?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저는 일상다반사. 그 역시 무뎌질 때로 무뎌진 상황이었는데 대신 화를 내주었던. 말리긴 했지만 멋져부렀던 T입니다.



3. 제 치부를 거의 다 압니다.



일상의 대부분을 도움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저는 그만큼 실수도 잦습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하지 않을 미숙한 실수들과 더불어 다소 위험한 실수까지 다양한데요. 저랑 같이 있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그런 일들까지도 경험한 그는 아직도 제가 해준 게 많다면서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친구 T를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6월 2일 방송된 ebs의 ‘다큐 시선’이란 프로그램 꼽쓸과 빙구 편에서 남자와 남자, 친구끼리의 관계가 아닌 남자와 여자, 연인의 관계인 것만 다를 뿐 저와 별반 다르지 않던 상황이 전파를 탔기 때문입니다.






삶이 팍팍해서 개인주의에 물들고 헌신의 정신은 사라진 지금 곱슬머리 장애인 남자와 자주 웃어서 빙구가 되어버린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저의 이목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꼽쓸은 근육병의 일종인 근디스트로피(Progressive Muscular Dystrophy, PMD)와 함께합니다.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꼽쓸, 빙구는 그런 꼽쓸과 단 한 시라도 같이 있기 위해 애씁니다.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없이 여느 연인들처럼 행복으로만 채웁니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도 가고, 필요하다면 업어서 계단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둘을 아프게 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를 남자의 죽음입니다. 꼽쓸과 빙구 모두 의연한 척 서로의 옆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미래보다는 현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40분도 채 되지 않는 다큐 한 편을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상황과 겹쳤기 때문이겠죠. 굳이 꼽쓸에게 저를 투영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됐던 시간이었습니다.



T와 저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우정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께 감사드렸고, 현재형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감사함과는 별개로 미안함의 영역 또한 많죠.



생각해 보면 우정에서 사랑으로 그 위치가 변경된다고 해도 그다지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도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녀가 내가 그렇듯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줬더라면, 짐작건대 이 세상 전부의 환희를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일 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을 힘듦이나 동정, 또는 모욕 등은 선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저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것이어서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한편, 저에게 미스터 T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며 꼽쓸과 빙구는 경이로우며,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녀에겐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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