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쪼대로 살아라”
한 드라마에 나온 대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 옛날 한 청년은 파일럿이라는 원대한 꿈을 꿨지만 모두가 짐작하다시피 주머니에 돈이 없어 꿈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청년에게 아버지의 훈장이 쥐어졌을 때부터는 아들이 곧 아버지의 꿈이 됐죠.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꿈이자 희망인 아들에게 너만의 꿈을 꾸라, 너만의 삶을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는 아들 역시도 자녀가 꿈이 되는 순간이 있겠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열정을 불태워 살아주길 바라는 먹먹해지는 마음. 그 맘속에 담긴 이 한마디는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고백하자면 저의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감사함과는 별개로 저는 제 멋대로 살 수 없습니다. 장애의 탓도 있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부모님의 힘듦을 알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내키는 대로 하고 살려면 얼마나 더 많은 힘듦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나름으로 이렇게 자제하고 살아도 보이는 건 현실뿐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어떤 것을 택하든 현실은 저를 무겁게만 합니다. 그래서 선택을 하는 매 순간이 낭비가 되는 건 아닐까 고민됩니다.
서른은 불혹에 비하면 피라미다.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20대의 기(氣)와 40대의 이성(理性). 그 중간의 끼인 30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택하면 안 되는 세대.
지금의 10년이 훗날을 결정한다는 거창한 말속에는 그 어떤 얼음보다도 시린 그 무엇이 있습니다.
아무리 눈에 잘 띄지 않는 피라미의 운명이라도 혹여 상어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열심히 헤엄쳐야 합니다.
사춘기보다도 삼춘기(三春期)… 즉 30대의 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더 확 와 닿는 요즘.
과연 쪼대로 사는 것이 옳은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됩니다.
세상은 어떤 일에 대해 고뇌하거나 선택 혹은 결정할 때 드라마에서처럼 멋진 음악을 깔아주지 않거든요. 음악이라도 깔리면 그나마도 선택이 쉬울 텐데 말입니다.
본문 이미지는 KBS 2TV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 이미지이며 출처는 KBS <쌈, 마이웨이>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은 ©KBS에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