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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ul 28. 2017

인생의 롤플레이

마지막 글을 쓴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꼭 굉장히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게임 이야기로 글의 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디아블로라는 게임 아십니까?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게임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개발한 이 작품은 동일한 이름의 소설이 모티브이기도 하죠. 탄탄한 스토리와 더불어 특유의 웅장하며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듯 어둡기도 하지만 게이머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합니다. 디아블로의 최신작인 3편은 2012년 5월에 발매하였으며, 초반에 조금 삐끗하더니 확장팩인 ‘영혼을 거두는 자’의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받고 있습니다.



디아블로는 캐릭터를 육성하는 게임입니다. 야만용사(Barbarian, 근접 전사), 마법사(Wizard, 말 그대로 마법에 능통), 악마사냥꾼(Demon Hunter, 활과 쇠뇌에 능통), 부두술사(Witch Doctor, 말 그대로 부두술에 능통), 수도사(Monk, 무술가), 성전사(Crusader, 중거리 전사), 최근에는 강령술사(Necromancer, 시체를 부리는 자)까지  출시돼 총 7개의 캐릭터가 있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는 제가 영문명 옆에 특징을 써놓았듯이 개성이 넘쳐서 전투 방식이나 생존 방법 또한 다른데요. 그렇다 보니 육성하는 방식 역시 다 다릅니다. 



캐릭터를 키우다 보면 하나 둘 장비를 맞춰가는 재미가 있는데 저절로 좋은 장비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미션을 완료하고 사냥을 해야 가능합니다. 롤플레잉 게임이 늘 그렇듯 약간의 반복적 노동이 필요한 겁니다. 



자. 게임 내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겠습니다. 지금부터 왜 게임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말씀드리죠. 놀라운 재미를 가진 게임이지만 저는 때로 디아블로를 플레이하면서 반복적 노동에 염증을 느끼곤 합니다. 좋은 장비라는 것이 시간만 축낸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운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느끼게 되는 감정들. 



그때 저는 얼른 깨닫습니다.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게이머는 게임 속 캐릭터에 고스란히 투영돼서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롤-플레이(Role-Play). 즉, 특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고 하면 과연 억지일까요?



인생은 태어날 그 시점부터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 누군가의 형제자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실은 그뿐만이 아니죠. 직장 내에서의 직함 그리고 상하관계 



따지고 보면 세상 어디에서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늘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딜레마는 게임 속 캐릭터는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왕이면 좀 더 잘 나가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버둥거림의 횟수가 많아지면 질수록 녹록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평생을 장애의 울타리 속에서 살았고,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보려 애썼습니다. 장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타이틀에 매여서 살고자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저는 장애라는 울타리 속에 살고 있는데 이 울타리는 참으로 크네요. 



잘나고 삐까번쩍 하는 삶은 아니더라도 남들이 하지도 않는 걱정을 하며 사는 삶은 아니지 않나 싶어 제 삶의 역할이 교체되길 바랐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비단 저만의 고민만은 아닌 줄로 압니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부여받은 역할들은 때로 놓고 싶을 만큼 무겁고 힘겨울 때도 있는데요. 



주위를 둘러보면 ‘그 자리’에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모닝커피 한잔 하러 카페에 왔는데 주문을 도와줄 점원이나 바리스타가 없다면? 

바쁜 일상 속 한줄기 위로가 되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이 곁에 없다면? 

거리에 환경 미화원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회피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인내하고 그 자리에 계셔서 감사한 마음. 자주 잊고 살지만 따뜻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버릴 역할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역할과 역량이 비록 자랑스럽지도 않고, 내세울 것 없다고 해도 누군가에겐 귀중하고 필요할 수 있기에 포기가 아닌 감내하며 가야 할 것입니다. 



혹 디아블로 III의 반복적 노동을 세상에서 또 행해야 할지라도 밤낮으로 해도 진전이 없을지라도 그래도 나아가야 함은 그 자체의 행위마저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힘내시란 말 대신 참고 견뎌보자는 말씀 전합니다. 

사실은 저도 참고 견디는 중이거든요. 







커버 이미지는 디아블로 III의 확장팩인 ‘영혼을 거두는 자의 월페이퍼이며 해당 이미지의 저작권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아울러 비상업적 목적임을 알립니다. 혹여 상업 목적으로 글을 사용하게 될 경우 이미지는 제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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