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치수 닮은 형과 그의 후배를 떠올리며
좀 옛날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세월의 탓인지는 몰라도 예전의 기억력을 갖고 있진 않아서 정확히 몇 년 전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옛날이야기인 건 맞다.
당시엔 활동보조인이 있었다. 활동보조인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장애인의 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한 애로사항을 보조인을 통해 덜고 나아가서 자립 역시 도모하고자 하는 유용한 서비스다. 허나 현재는 인력 부족으로 활동보조인이 내겐 없고 있다고 해도 여러 문제로 빠르게 인력 공백이 생긴다.
암튼 활동보조인이 있었을 그때, 늘 어린 친구들 하고만 매칭이 되다가 모처럼 형이 보조인을 하게 됐었다. 언뜻 보기에는 다정다감과는 담쌓은 것처럼 보이고, 츤데레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생김은 딱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채치수’ 정도의 외모였던 그는 의외로 장난기 철철의 허허실실 형이었다. 매사에 장난, 진지함이라고는 단 1그램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보조인이라면 이용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그 요구에 따라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자립 신장이란 측면도 있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하는 것이 옳다는 전제하에서.
그런데 그러려면 간혹 가다 이용자의 토로도 들어야 하는 것이 현장의 의무다. 부족함이라는 건 언제나 힘듦을 동반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 양반은 어째서인지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늘 조크로 일관했다. 그리고 혹여 내가 때를 가려 가며 장난해 주기를 부탁하면 인생도 팍팍한데 좀 웃어야지 하면서 오히려 민망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형이니까 참았다.
지나와서 한편 생각하면 장난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보다 진지할 때가 많았던 내 기분을 풀어주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이었겠다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당시엔 그저 쉽게 쉽게 넘어가려는 형이 싫었다.
그 형에게 염증을 느낄 그즈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그 시기에 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형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는 후배가 있는데 딱 하루만 내 대신 그 후배가 집에 올 거야. 바빠서 그러니까 조금만 이해해 줘.”
몸을 맡겨야 하는 일이기에 강경한 어조로 안 된다고도 해봤지만, 결국 그 하루만큼은 온전히 봉사 명목으로 하기로 하고 합의를 봤다. 채치수 형의 후배는 나랑 동갑이었고, 같은 학교 선후배 간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 친구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조금 빡세게 시킬 법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보다 더 쉬엄쉬엄 하게 했다.
일의 막바지 무렵 그는 말했다.
“내가 네 이야기를 쭉 들으니 드는 생각은 참 부럽다는 거야.”
부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녀석이 내가 부럽다니 궁금했다. 당최 그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 曰
“넌 군대도 갈 필요도 없고, 직장도 필요 없잖아.
너 같은 애한테 돈을 벌어오라고 부모님이 그러시겠냐 아니면 일하라고 잔소리를 하냐
그저 때 되면 먹고, 자고, 싸면 그만이잖아. 얼마나 편해. 네가 부러워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할 말 참 많았다. 한데 도리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더불어 그때 처음 알았다. 나 같은 놈을 부러워하는 이가 있다는 걸.
이튿날, 채치수 닮은 그 형은 돌아와서 전 날 일을 물었고,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 그럴 리가 없다면서 그 친구를 두둔하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후배를 위한 변명을 들어야 했다. 뭐, 그 일 때문은 아니고 어차피 헤어질 운명이었으니까 그랬겠지만 치수 형과 나는 그로부터 얼마 후 작별하고 말았다.
정확한 시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 그 친구가 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실소가 난다. 얼마나 삶의 여정이 두려웠으면 평범한 일상을 대부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이에게 동경을 표했을까 하고… 필시 자신이 보고 싶은 일부만을 봐서 그럴 것이다. 필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도 내게 부러움을 표했던 친구처럼 종류는 다르지만 동경의 대상은 있지 않은가? 연예인의 외모와 화려함, 수많은 인터넷 방송 자키들을 향한 시선들. 소위 셀럽(Celebrity, 유명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들과 똑같이, 동등하게 혹은 그걸 넘어서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한 세상이다. 내가 그들보다 못한 것이 무어냐. 나도 한 번 되어 보리라 하는 도전이라고 보기엔 너무 먼 객기와 반대로 저 사람들은 뭘 먹고살기에 저렇게 떵떵거리며 사는데 난 왜 이따위냐 하는 자괴감이 공존하는.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도 이따금씩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마음인지라 자유로울 순 없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각자만의 삶이 있는 법이다. 알아준다고 해서 소중하고, 그 반대라고 해서 남루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전능한 존재는, ‘그대를 그대 화’ 시키기 위하여 엄청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겠는가. 굳이 디테일하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셀럽이라 불리는 그 사람들도 결국 모두가 그렇듯 고독하고, 외로움에 눈물지으며, 알지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몸부림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일 터.
다만 그것들을 감추고, 탄로 나지 않기 위해 변장해야 하는 그들이 더 외로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해서 잘 나가는 이들을 부러워 하지만 말고 당당히 살아가 보자. 앞서 봤듯이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이도 관점에 따라서는 장애인을 부러워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지금의 당신 모습을 부러워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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