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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ug 14. 2017

친구의 취중 댓글

모두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근본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걸 떠나서 본디 인간은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기에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



누구도 부정 못할 뚜렷한 이유 때문에 이전부터 지금까지 평등을 향한 갈망은 쭉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런 절절함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선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대로 이어지는 행태가 개탄스러워서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 의미 없는 독백을 남겨봤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의 댓글이 하나 달렸다. 익숙하지만 낯섦의 향기도 공존하는 이름 석 자. 친구라고 칭하기엔 너무 오랜만인 이의 댓글이었다. 그런데 그는 시작부터 날 꾸짖었다. 마치 제가 인생을 더 살아본 양 선생처럼 가르치려 덤벼들었다. 가소로웠지만 계속 읽어갔다. 



그는 ‘차별 없는 사회’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사람들은 차별과 평등 등의 단어를 내세우지만 결국 그것들은 허울뿐인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면서 부당함으로 인해 손해 보는 자도, 혹은 그 부당함 때문에 특혜를 입는 자도 속 시원히 얘기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손해 보는 자는 억울함에 땅을 치느라 말을 못 하고, 특혜를 입는 자는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기에 조금은 진행 과정이 잘못됐더라도 침묵하고 넘어간다는 그런 취지였다. 그러면서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억하건대 동생이자 친구였던 그의 말주변은 본디 그리 정돈된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필시 댓글에 쓰인 말투로 보아 취중에 쓴 글로 보였다. 그런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를 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헬조선, N포 세대… 같은 이젠 진부해져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단어들이 왜 생겨났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건 ‘경쟁’ 속에서 비롯됐다. 물론 경쟁 구도 자체를 나쁘게 보고 싶지 않다. 이를 테면 스포츠 경기라든가 기타 경쟁이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는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 몇몇 분야만이 아닌 삶 전체에 뿌리내린 과도한 경쟁,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 급속하게 그리고 만연히 퍼진 경쟁 구도를 이제 와서 바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이도 많겠지만 그냥 그렇게 치부하기엔 꽤나 쓸쓸하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잡초 밟듯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 혼자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과는 대조되지 않는가. 할 일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지만 저마다 누리고자 하는 이상향은 비슷해서 타인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삶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서 눈을 째리며 쳐다보고, 욕을 하며, 혹은 한숨 쉬지는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지. 거듭되는 실패에 지쳐 악만 남은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악보다는 악을 품을 힘조차 남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눈앞에서 놓친 많은 것들이 꼭 실패와 연관되느냐 하면 그건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일부는 내 선택이고, 또 일부는 신의 섭리일 수도 있으니까. 내 선택에 관하여서는 양보라는 단어 또한 덧붙이고자 한다. 





난 앞으로도 선택의 기로에서 또다시 수많은 양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쥐어주시지 않아서 억울한 것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껏 써왔던 안타까움이나 비참함의 그림자를 뒤로 하고 늘 그래 왔듯이 경쟁이 덜한 사회, 아니 경쟁이 있더라도 “저 자(者)를 내가 못 이겼어.”라면서 분통함으로 눈물짓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축하를 전하고, 또 내 길이 아닐 때는 과감히 돌아가는 용기가 있는 웃는 사회가 되길 바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모든 것에는 

                                                           귀천이 없다



다시 한번 이 글의 영감을 준 버릇없는 프렌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까불지 마라! 인마! :)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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