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급브리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Oct 18. 2017

빈 무도회장 한켠에 놓인 유리 구두

서른일곱 번째 B급브리핑

<일러두기>

B급브리핑 글의 형식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님의 ‘앵커브리핑’ 형식을 참조하여 작성했으며, 더불어 이 형식을 빌려 집필하는 것을 앵커님께 허락받았음을 알립니다.



Tears의 B급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재를 뒤집어쓰다’라는 의미를 지닌 불운의 여인 신데렐라는 모두가 다 아는 운명의 그날도 어김없이 아궁이 앞을 지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집안일과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착한 그녀였지만 때로는 이런 시간을 끝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겠지요. 그 기도를 신께선 들으셨을까.



모두가 원하는 완벽한 조건의 왕자는 마침 신붓감을 구하고, 이 소식을 듣게 된 주책스러운 세 처자들은 쪼르르 바깥으로 향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야말로 절호의 찬스. 그녀의 눈물 어린 호소를 들은 요정은 기적을 베풉니다. 그리고 마침내 환골탈태한 신데렐라의 모습.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있는 법. 마(魔)의 12시는 그녀를 원래대로 돌려놓습니다. 쏜살같이 사라져야 했던 그녀의 그림자. 잠깐이었지만 환상적이었던 만남에 남겨진 흔적이라곤 유리 구두. 이야기는 그 이후에도 이어집니다마는 오늘 저는 빈 무도회장에 놓여 있던 유리 구두에 주목해볼까 합니다.



그 넓고 화려한 무도회장에 있던 유리 구두는 빛났을까. 아마 주인도 잃고, 목적도 잃어버린 유리 구두에 영롱함은 바랬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비치는 밝은 빛과 여러 켤레의 신발이 독거의 쓸쓸함을 감춰줄 수 없듯이 말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장애인계는 Independent Living 붐이 일었습니다.



시설이나 혹은 생가의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누리길 바라는 움직임이죠. 저 또한 그러길 원합니다. 누구의 방해나 간섭 없이…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간섭만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게는 온전한 나만의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만일 그것만을 고집한다면, 객기나 부리는 어린아이 정도의 심성일 뿐이겠죠.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은 ‘그룹 홈’이나 ‘체험 홈’이라 명명한 집에 입주하곤 합니다. 그런데 가족의 곁을 무조건 떠나기만 한다면 그것이 독립적인 삶일까요? 늘 제가 강조하던 것은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왜 꼭 장애인들은 장애인끼리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왜 그 부분을 강요하는지도 말입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가족 공동체와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 그리고 남겨진 형제와 부모의 걱정은 어찌 해결할 것인가에 고민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독립적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나으며, 더 좋은 것은 장애인과의 연합에서 벗어나 비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 적어도 제게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넓은 무도회장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유리 구두,  모습이 변하기 전에 집에 놓여 있던 의미 없는 여러 켤레의 신발도 아닌 왕자재회했을 때 다시 신게 된 그 유리 구두가 가장 좋습니다.



이것이 저의 취향입니다. 부디 ‘취존(취향 존중)’ 해주시죠.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족입니다.

체험 홈을 제안한 이는 제 오랜 벗이었습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은 제가 잊을 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줬습니다. 내가 그들의 삶을 대신할 수 없듯이 그들 또한 나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바라건대는 반드시 나를 보려거든 업무의 조각은 전부 털어버리고 오기를…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가객의 시… <서른 즈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