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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Feb 07. 2018

It's Not Your Fault

누군가는 내게 장애에 매여있다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매여있다 보면 도태되고 만다고도 했다. 어느 동료의 이야기다. 장애라는 이름이 무겁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난 장애에 매여 본 적이 없다. 다른 글에서도 쓴 기억이 나는데 어느 날 눈을 뜨고, 자각을 하니 장애인이었다. 내게는 보행이나 뜀박질의 환희도, 매일 일어나 키를 재보는 기적도 목격한 적이 없다. 내 몸은 그냥 나였고, 나는 그저 나였다. 그러니 스스로는 절망하거나 우울해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이유 모를 부자유스러움의 원인을 쫓아 탐구하며,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행복해지고자 이것저것 알아봤을 뿐. 그러니 매여있다는 선배, 동료, 후배. 뭐 그것이 중요하겠냐만 아무튼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장애는 맹수와도 같다> 출처 = Unsplash



나는 지금도 장애라는 놈과 싸우고 있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이 휴전이라는 것도 있고, 장기화되면 암묵적 자비도 있는 법인데 이 놈의 것은 그딴 것도 없다. 자비는 저 멀리 바다에 내던져 버리고 처음 발발 그 당시처럼 눈을 위로 치켜뜨고 사나운 치아를 드러내며 살기 있게 덤벼댄다. 나는 점점 세월 흐름에 따라 전투력 또한 무뎌지는데 그 기세, 방어해 내기 참 어렵다. 



장애가 지랄을 하든 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행복해질 조건을 꺼내본다. 아침나절 내 항문 중앙을 제대로 찌르는 따사로운 햇살이 반갑고, 까끌한 속이지만 배를 데워 줄 밥 한 술이 반갑다. 오들오들 떨 법한 날씨에 커피믹스 한 잔이 큰 낙이며, 만일 두 잔 먹는 날이면 물개 박수 칠 정도로 행복하다. 집필하느라 미뤄뒀던 영화 한 편, 친구 같은 엄마와 공감하며 시청할 수 있는 것도, 우연히 노래 듣다가 좋은 노래 발견해서 아이폰에 동기화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 배우 한 명이 내 저질 영어 격려에 좋아요와 하트 댓글을 달아 준다면 행복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일 터.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일인 글을 쓸 때 제일 행복하다. 즐겨하는 게임 안에서 제법 재주를 부릴 때보다도 더 말이다. 이러니 난 매여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 주제에 또 물색없이 자주 웃긴 얼마나 자주 웃는지. ㅋㅋ



물론 이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의 장기적인 지랄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유’ 



록키의 보폭 넓은 걸음과 뜀박질을 빼앗아 갔고, 배우 드웨인 존슨의 큰 키와, 이소룡의 탄탄한 근육을 빼앗았으며 임요환의 빠른 손 스피드를 빼앗았다. 뿐만 아니라 내 병영생활, 지금보다 더 많았을 인맥과 돈벌이도 훔쳤고, 사랑과 연애, 가정과 아이는 자체적으로 외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나쁜 자식!! 먼지 나도록 흠씬 패주고 싶다. 



그럼 난 행복할까? 불행할까? 단연코 행복하다! 물론 누리고 있는 것과 빼앗긴 것 중에서 가치적 득과 실을 판단하자면 실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하지만 행운이게도 신께서는 득과 실의 떠올림 빈도를 ‘득’에게 더하셔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별개로 화나는 것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의연함 아니, 이런 행복을 누리는 자세를 마치 당연한 듯 보는 시선에 있다. 장애인에게 장애에 매여있지 말라는 충고는 어찌 보면 물고기에게 물에 있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의연함은 그저 세월의 흐름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과 뼈가 찢기는 듯한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동안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는 믿음과, 네 운명이니 네가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애티튜드는 애초에 접근 방식이 다르다. 오늘날의 사회 구조가 특히 장애인을 향해서는 후자 쪽인 것 같아 안타깝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타인은 물론이고, 부모형제까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어떤 류의 판단도 지양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인생에서 절망을 경험할 때, 자책을 하곤 한다. 



영화 <굿 윌 헌팅>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때, 많은 말 대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



“It's Not Your Fault.”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단지… 있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픔은 본인의 잘못으로 비롯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커버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굿 윌 헌팅, 1997年 作> 스틸 이미지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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