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견 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Apr 01. 2018

‘읽씹…’ 마음까지 그래야 하는가?

Pixabay




읽씹



오래전 삐삐라 불렸던 무선호출기와 무전기 크기와도 같던 시대와는 달리 이른바 스마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풍경 또한 바뀌어 갔습니다. 비록 당시엔 첨단을 달렸던 기술력이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아날로그적이었던 시간들. 이젠 첨단이라 부르기에도 모자란 하이테크의 세상에서 모두에게 알려진 한 모바일 메신저 때문에 생겨야 했던 현상. 그것이 읽씹. 즉, 메시지를 읽고서도 답을 하지 않는다는 신조어이자 속어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똑한 세상에서 읽씹은 매일을 사는 이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에서 탈피하고, 뿐만 아니라 두세 사람만 건너면 또다시 아는 사람이 생긴다는 요즘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워버리는 편이 현명하다고 박수받는 이 상황이 야속하다기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과한 걸까요?



모바일 메신저의 읽씹 현상이 보편화가 된 지금. 그렇다면 마음의 소리와 텍스트까지 읽고 무시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됩니다. 



어느 변비약 광고의 한 대목에선 변비 때문에 하늘이 그린 색이니까 제발 좀 나오라고 포효합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일. 먹고 배설하기. 하지만 그 과정 가운데 어느 하나 순탄치 않다면 어떨까. 그것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고통입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해서 두 노배우의 간절한 연기는 남 일 같지 않지요. 더럽다고 무시하고, 냄새 때문에 피하게까지 되는 이 더러운 배설물을 배출해야 하는 일이 타인처럼 쉽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상실감은 참으로 큽니다. 



앉는 것부터… 자세를 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유지하는 일까지. 찰나의 삼박자가 맞물려야 가능합니다. 이쯤에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읽씹과 변비가 무슨 관계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변비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앞서 말한 찰나의 삼박자는 필요 없겠지요. 그러나 그 삼박자는 저를 돕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때문도 한몫합니다. 저를 들고 옮기는 일은 일가견이 있는 가족들이나, 익숙하거나 서투른 지인들 모두로 하여금 힘겹게 합니다. 그 힘겨움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해준 모두가 있었기에 저의 인생이 여태껏 피어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감사의 한켠에는 죄스러움이 자리합니다. 제 몸 컨디션이 어떠냐에 따라 매일 감당해야 하는 범위가 아주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경중에 관계없이 저를 돕는 많은 분들은 자신이 감내한 고통의 크기를 겉으로 꺼내지 않습니다. 적게는 하루 세 번, 많게는 열 번도 더.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화장실을 포함한 저의 생활 전반을 위해 온전히 희생해야 하는 가족과 지인들. 



그들의 노고를 도저히 뇌리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실패의 확률도 늘고 때문에 찰나의 삼박자 요법이 필요한 것이겠죠. 누군가는 그런 마음 자체를 지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모두를 편안케 하는 길이니까요. 저는 그 말을 경청해야 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 외로 잘 되지 않네요. 상대의 마음을 읽었는데 읽지 않은 것처럼 외면하는 일이 말입니다. 



바라기는 저는 아주 사소한 일로 매일 마음의 읽씹을 생각하지만, 여러분들 모두는 절대 그런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새겨진 노란색의 1은 누군가에겐 절실함이기도, 또 누군가에겐 용서와 관용의 메시지이기도 할 테니까요.



PS. 아~ 오늘 오후에는 참 편안하네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It's Not Your Faul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