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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Feb 23. 2018

포레스트 검프의 결심, 마침내…

소년 포레스트는 잘생김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였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도 융화가 힘든 캐릭터였죠. 그러나 영화를 조금만 더 보고 있으면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신께서는 그에게 조금은 부족한 지능과 불편한 다리를 선물하셨기 때문이죠.



그의 마음에는 다만 몇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아닌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 열망이 존재했을 것이고 또한 어느 누구보다 힘 있는 걸음을 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발에는 언제나 천근만근의 무게보다 무거웠을 브레이스가 있었고, 또래와 어른들의 무분별한 ‘병신’이란 조소가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며 운명이라는 핑계로 침묵하기에는 참으로 참담했던 삶.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다름 아닌 어머니와 하나뿐인 친구 제니뿐. 세상은 포레스트에게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했고, 이윽고는 또래들로부터 돌도 맞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그가 택했던 방법은 다름 아닌 도망이었죠.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스틸컷.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 절실함에 신도 눈물 지으셨을까. 마침내 포레스트는 묵직한 쇳덩이보다 더 무거웠을 브레이스와 영원히 작별합니다. 이 장면이야 말로 제가 생각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명장면입니다. 새털보다 가벼워진 몸놀림을 하는 자신을 본 그는 마침내 결심합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며, 또한 열심히 살기로 말입니다.



세상엔 지금 이 시간에도 포레스트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잘 살아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세운 그 목표점에 다다르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적잖고 만일 실패의 길을 걷게 되면, 많은 실망을 하게 되죠. 같은 노력을 해도 아니 심지어는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 땀 흘려도, 속된 말로 ‘될 놈 될’. 다시 말해 내가 아닌 타인 중에서 성공할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성공한다는 자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오늘날.



그런 날들 가운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소위 ‘되는 사람들’의 번영 속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혹자는 이같은 거대한 상실감과 고독을 너무나 쉽게 열.등.감.이라는 세 글자로 매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볼일을 보면서도 오늘은 무슨 주제로 어떤 글을 쓸까. 길이는 얼마큼 할까. 고즈넉한 밤사이 인정이라고는 찾기 힘든 거센 강의 물줄기처럼 머릿속에서 쏟아졌던 단어들을 다시 되뇌며 써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울림 없는 메아리 같아 보이면 안 되기에 신중을 기합니다.



하지만, 빠르게 유입되는 새로운 강자들과 기존 작가들의 승승장구는 저로 하여금 주저앉고 싶게 합니다.



이런 마음과는 결을 달리 하지만 공존하는 왠지 뿌듯한 느낌. 올림픽에서의 한국 선수들의 선전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뉴스도 광고도 너무 메달리스트에만 집중을 하는 게 보이거든요. 결과야 좋으면 기쁘고, 좋지 않으면 아쉬운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감안하더라도 솔직히 한숨만 나옵니다.



바라는 것은 가뜩이나 팍팍한 삶인데 미디어에서만이라도 잘 나가는 자들의 삶만 비추기보다 조금은 더디고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길 원합니다. 빛날 자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빛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 내밀어야지 이미 빛나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무한정 빛을 건네면 그 소중함을 알아채기 힘듭니다.



오늘날 이 같은 세간의 관심 불균형은 마치 소년 포레스트를 놀려댔던 무리들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 현상은 그리 빨리 사그라들지도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내함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두가 되길. 또한 그 안에서 참 자유를 느끼길.


 

글의 마무리를 위해 다듬다가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는데, 그것은



영화 속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는 성인이 된 후엔 그 누구에게도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는데 이 지면에 펼쳐진 글 전부는 시기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1994年 作> 포스터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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