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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pr 10. 2018

레슬매니아 34를 보내면서

프로레슬링 칼럼 16



레슬매니아는 WWE 팬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전 세계 레슬링 팬들의 축제이자 미 전역의 축제이기도 하다. 해가 거듭할수록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기대의 이면에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왜냐하면 레슬링 팬들은 신규 팬의 유입도 있지만  반면 이른바 정통성을 자랑하는 올드 팬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레슬링을 보고 자랐고, 때문에 소위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들의 경기를 마주했음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은 곧 레슬링을 잘 아는 사람의 경지에 이르게 했을 터. 



프로레슬링이라는 잘 짜인 드라마가 장수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팬들의 덕이다. 팬들의 환호와 야유가 이 산업을 일으키고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그 점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몇 년째 레슬매니아에서는 마치 올드스쿨 로우와 같이 전설로 불리는 선수들로 도배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글을 쓰는 본인 역시 여러 레전드들의 팬이다.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짱 좋은 그들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닌 조력자의 역할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다. 이런 마음 때문일까? 특히나 레슬매니아 주간에는 홀 오브 페임이 끼어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추억 향수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중 가장 큰 행사인 레슬매니아의 중심에 현역보다 전설이 많다는 것은 흥행에만 몰두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레슬매니아야말로 전설들의 의존도를 줄이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특히 이번 레슬매니아에선 예상을 비껴가는 경기도 많았다. 첫 번째로 워큰 맷을 도운 브레이 와이엇이 그렇다. 오랜 팬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낯설었던 The Ultimate Deletion 매치에서 맷 하디와 브레이 와이엇이 대립했는데 레슬매니아 직전까지 꽤나 장기간 동안 대립했던 두 선수기 때문에 이번 앙드레 더 자이언트 배틀 로열에서 있었던 브레이가 맷을 도운 장면은 꽤나 쇼킹했다.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만 맷 하디가 그렇게 외쳐대던 ‘Delete’ 때문에 브레이의 기억이 삭제된 것은 아닌지. 



두 선수가 만들어낸 시너지가 태그 팀까지 이어져 블러전 브라더스와의 대립이 가능하다면 꽤나 흥미로울 듯하다. 향후 브레이가 언더테이커와 같은 포지션의 선역 활동도 가능할지 역시 지켜보려 한다.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요소라고 한다면, 역시 시나 대 언더테이커의 경기일 듯 싶다. 사실 대립 복선이랄 것도 없이 이 대결은 시나의 의한, 시나를 위한 경기였음이 분명하다. WWE의 수뇌부 역시 팬들의 기대치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고, 해당 대립을 어떻게 주목시키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선택은 언더테이커의 무거운 침묵과 Basic Thuganomics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입담의 대결로 압축됐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옷은 Never Give Up의 옷을 입었지만 하는 행동은 Word Life 당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을 끄든, 번개를 치든, 무슨 짓이라도 해 봐." (레슬매니아 34 이전 로우에서 존 시나의 세그먼트 중에서)



그리고 그 응답은 여러 말이 아닌, 당일 대립으로 치러졌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2000년 당시 American Bad Ass (이하 ABA) 기믹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는 현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자꾸 개인적인 생각을 섞어 죄송한데 오히려 장의사 기믹, 그러니까 언더테이커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 기믹을 유지하고 은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상대적으로 ABA는 그 닉네임에 어울리도록 약간은 과격한 스타일을 구사해야 하고, 그러려면 놀라운 피지컬이 요구된다. 반면 장의사 기믹이야 말로 등장이 분위기부터 압도한다. 실제로 이번 경기에서도 등장과 퇴장의 소요된 시간이 경기 시간을 압도한 만큼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담으로는 빈스 맥맨이 처음 테이커에게 ABA 기믹을 제안했을 때 테이커가 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시나와 테이커의 이번 대립에서 겁에 질린 듯한 시나의 표정연기는 일품이었고, 테이커의 번개 신도 나쁘지 않았다. (원래 장의사 기믹은 조금 유치한 맛이 있어야 제 맛.) 존 시나를 너무나 손쉽게 이긴 터이기도 하고, 작년에 링 중앙에 벗어버렸던 옷가지를 번개로 없앤 것은, 서른다섯 번째라는 무시할 수 없는 상징성의 중심에 그를 재등장시키겠다는 의지적 표현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스카와 샬럿 플레어의 대결은 Thumbs Up은 아니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도의 경기였다. 아스카의 무패행진이 끊기느냐보다 샬럿까지 접수하느냐의 주안점을 뒀던 본인은 결과가 약간 의외이긴 했지만 샬럿 역시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서 아스카의 아성을 잠재울 적임자는 샬럿이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스카와 샬럿의 경기와 어소리티 대 앵글과 로우지의 경기를 겹쳐 생각해 보면 역시 로우지는 뛰어난 퍼포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  



반면 지나치게 스테파니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 조금 의아했지만, 상대의 공격을 받는 능력과 연기력 등은 뛰어났으므로 레스너의 무적 기믹과는 달리 선역과 악역 모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기술을 좀 더 레슬링 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과 또 그녀의 행보가 그다지 오랜 시간 풀타임으로 머물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기대와는 달리 신스케 나카무라와 AJ 스타일스 간의 경기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랄까? 그나마 나카무라의 턴 힐(악역전환)이 두 선수의 향후 재차 대립을 암시하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내용이 딱히 없어 적어본다. 



이상이 레슬매니아 34의 짧은 소감이자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반가운 얼굴, 대니얼 브라이언의 경기도 있었지만 결과는 예상 가능했었고, 브록과 로먼의 무적들(?) 간의 경기가 예상 못한 수순으로 끝났지만 굳이 첨언하지 않기로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WWE는 잘 짜인 각본을 가진 드라마다. 그 드라마 한가운데 있는 배우들, 즉 선수들은 흐르는 세월만큼이나 노력과 요령이 녹아들어 매해 가장 성대한 쇼에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것이다. 그 날카로움이 새로운 곳에서 빛날 때, 팬들은 다시금 환호할 것이다. 그리고 팬들은 벌써부터 그 날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과가 어떻든, 레슬매니아 34를 보내면서 올해 홀 오브 페임에 헌액 된 마크 헨리가 눈물 흘리던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PS. Year's Best -  Seth Rollins vs The Miz vs Finn Bálor - Intercontinental Championship

PS. Year's Worst -  Brock Lesnar vs Roman Reigns -  Universal Championship

PS. 리코셰 최고!!


Image Courtesy of © WWE.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PgR21.com, Wmania.net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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