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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pr 05. 2018

존 시나를 아낌없이 응원하게 되다

프로레슬링 칼럼 ⑮



WWE 산하단체 OVW의 노랑머리 



외모는 수려하고 말 주변도 뛰어났으나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긴 사람은 처음부터 주목받는 법은 없지만... OVW를 거쳐 WWE에 입성한 그는 한낱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이 아니라 언더테이커의 말이다. 그랬던 그가 힙합과 만나고부터는 그야말로 급성장하게 됐다. 



Word Life. 그리고 Basic Thuganomics. 그 옷을 입은 시나는 마치 전성기 시절 숀과 같았고, 더 락 같아 보였다. 아. 말 주변 말이다. 선을 넘는듯한 아슬아슬한 마이크워크. 그러나 흔히 요즘 하는 말로 사이다스러움 때문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Word Life란 말과 Basic Thuganomics라는 테마가 한 몸이라고 느껴질 즈음 WWE는 그에게 새로움을 원했다. 절대 굴복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존재. 그게 지금 존 시나의 모습이다. “Never Give Up”이라는 캐치프레이즈 때문일까? 사내에서는 그에게 패배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오죽하면 ECW를 재현한 그 링에서 랍 밴 댐과 겨루어 이기게 했으니. 그것이야 말로 계란 세례 맞기 딱 좋은 처사였다. 



늘 팬들로부터 비판이 난무하면 ‘우리는 나무 한 그루를 보는 것이 아닌 숲을 본다.’면서 이른바 빅 픽처론을 내세우는 WWE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시 경기는 회사 스스로가 제 얼굴에 펀치를 날린 격이다. 그 날 이후 팬들은 시나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지겹다.’ ‘꺼져라.’등의 막말도 감수해야만 했다. 



솔직히 이런 역반응을 예상치 못했다면 거짓말일 터. 내가 보기엔 로먼 레인즈의 현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는지 연전연승의 무패행진을 달렸던 그였다. 나중엔 각본이나 상대에 관계없이 존 시나의 승리를 많은 팬들이 점쳤고, 점점 혹시나의 기대는 역시나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테마곡인 ‘The Time Is Now’가 꼴 보기 싫을 정도였고, 가뭄에 콩 나듯 상대 선수가 그를 꺾으면 마치 내가 그를 꺾기라도 한냥 ‘Yes’를 외치기도 했다. 그를 싫어한 데는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이유인 ‘경기력’ 때문이다. 



한국 팬들에게 익히 알려진 나쎄형(엄청나게 힘센 형을 속어로 표현한 줄임말)이란 별명을 입증이라도 하듯 강철체력이었다. 상대에게 공격당해도 어느새 다시 일어나 숄더 어택(Shoulder Attack) 2번에 슬램 유 캔트 씨 미(You Can't See Me) 이후 어깨 툭툭 털고 파이브 너클 셔플스(Five Knuckle Shuffles), 바로 애티튜드 어드저스트먼트(Attitude Adjustment). 카운트 1-2-3!!! 이 구도로 어떤 상황이든 모조리 승리를 쓸어담았다. 



그러니 링 바깥에서의 선행을 제외하곤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조금씩 변화한 계기가 있다. 다름 아닌 US 챔피언 오픈 챌린지 때부터다. 전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세자로와의 경기와 새미 제인과의 경기다. 또 그 후 어느 PPV에서 열린 케빈 오웬스와의 경기도 내 뇌리에 남았다. 



그 경기들을 접하기 전만 해도 그냥 레슬링을 잘 모르는, 그러니까 기술을 구사하는 방법도 상대의 기술을 받는 법도 잘 모르는 허울뿐인 탑 이벤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합이 이루어지니 아름다운 레슬링이 탄생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시나의 기술 구사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치열한 공방전이 승패의 향방을 갈랐고, 그 과정이 납득되기 시작했다. 시나는 그때 비로소 프로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설정상 나쎄형일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센 사람이었다. 



Many times life will hit you hard, knock you down, and hurt you. Persevere, Never Give Up, and do your best get up and keep going #NGU (삶은 항상 나를 아프게 하고, 쓰러뜨리고, 다치게 한다. 인내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어나서 계속 전진해야 한다. #NGU)” 



2015년 9월 경, 큰 목 부상을 겪은 후 그가 남긴 트윗이다. 



그의 불굴의 의지 때문이었을까? 부상의 중함에 비해 빨리 돌아와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그리고 근래에는 과거에 무조건적인 승리만을 누릴 때보다는 더 많은 패배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자신을 애송이라 칭했던 거물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의 커트 앵글이 관중들의 You Sucks 챈트에 반가워하듯 시나 역시 John Cena Sucks 챈트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됐다. 



전설에겐 애송이, 팬들에겐 레슬링을 모르는 사람이었던 자가 곧 전설의 반열에 오르려 한다. 그 세월의 무상함 앞에 눈물짓는다. ‘The Time Is Now’가 이젠 더 이상 듣기 싫지 않다. 만일 테이커와 시나가 만난다면 늘 그렇듯 각자의 캐릭터로 붙어주길 바라나, 정말로 American Bad Ass로 테이커가 돌아오면, 시나 역시 Basic Thuganomics를 테마로 쓰던 시절로 돌아가 이 구역 최고가 누구인지 결정 지어주길 바라본다.



Image Courtesy of © WWE.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PgR21.com, Wmania.net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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