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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un 08. 2018

치밀하고 미세한 움직임, 그 녀석은

마흔세 번째 B급브리핑

<일러두기>

B급브리핑 글의 형식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님의 ‘앵커브리핑’ 형식을 참조하여 작성했으며, 더불어 이 형식을 빌려 집필하는 것을 앵커님께 허락받았음을 알립니다.



Tears의 B급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추억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먼, 옛이야기를 부모님께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편히 몸을 누일 이부자리까지 마땅치 않던 그때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잇감조차 없었습니다. 딱지와 고무줄, 그리고 구슬치기로 대변되는 토속적 놀이에서 아이들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방구차’였습니다. 



희뿌연 연기가 뒤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 꼭 사람이 뀌는 방귀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아이들은 방구차를 만나면 마치 절친한 벗의 발자취를 쫓듯, 혹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사랑 가득 담긴 따스한 밥을 빨리 먹기 위함이듯 그렇게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때로는 달리기 경쟁을 하기도 했고, 정체모를 희뿌연 그 연기를 한 번이라도 더 맞기 위한 의미 없는 노력도 했다지요. 아마도 그 시절, 아이들은 방구차의 정체가 방역을 위한 용도였는지는 몰랐을 터. 



자, 그러면 이제 전해 들은 이야기 말고 한켠에 담긴 추억 속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도시에서 살았던 저는 자연과 마주할 적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꽃과 나무에 대해 잘 안다든가 아니면 개울물에 들어가 장난을 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들은 없었죠. 그래서인지 한 번은 어머니께서 저를 업고 길을 나서셨습니다. 실은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껌딱지이긴 합니다마는, 그때는 그래도 나름 먼 곳으로 저를 업고 가셨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이내 맑은 냇물이 흐르던 그곳에 어머니께서 앉으셨죠. 저를 안으신 채, 한참을 구경하게 두었던 어머니는 물을 먹어보라며 직접 당신의 손으로 떠주셨던 기억. 기억 속의 그 물은 참 청아하고 맛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날의 그 물보다 맛있는 물을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마음의 안정이 물의 맛을 더해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순간을 감히 ‘추억’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떤 날들 속에 살고 있을까. 



몇 해 전 선풍적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배경을 한국으로 옮기고, <왕국 시리즈>를 찍는다면 모르긴 해도 <먼지 왕국>이 되지 않을까. 




Source : Pixabay



그렇습니다. 한국은 지금 먼지와의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정부는 갖가지 대책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갖가지 뉴스 보도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은 조만간 먼지의 공포로 뒤덮일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법한 병들이 운위 되는데 그 원인이 고작 먼지 때문일 수 있다니



조심하고 대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니까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자조를 실천해야 하는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틀 전에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비록 어릴 적 편한 마음으로 일관하던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영혼의 쉼을 위해 다녀왔습니다. 먼지 따위가 제 의지를 꺾을 순 없었죠.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치밀하고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으로 많은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그 녀석… 먼지는 활동하고 있지만 반드시 활동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지까지 막을 순 없으니 하루속히 대책이 나옴과 동시에 시행돼야 것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경각심을 위함도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바삐 뛰어야 하는 사람들 맘이라도 편하게 해달라고 하면 무리한 요구일까. 하기사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는 일조차 위험한 일로 분류되는 요즘인지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씁쓸한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족 하나를 달아드립니다. 늘 그렇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외출의 빈도수가 적습니다. 새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횟수를 세기 위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동원하면 남을 것 같을 정도이니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장애인은 사계절 전부 외출하는 것이 어렵다. 봄에는 싸늘해서 나가질 못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나가질 못하고, 가을에는 쌀쌀해서 나가질 못하며, 겨울에는 추워서 나가질 못한다. 웃프지만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대한민국에는 다섯 번째 계절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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