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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an 14. 2019

4년 전 오늘의 소셜미디어 - 下

출처 = Pixabay. 이미지 수정. 폰트 = 네이버 나눔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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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오늘의 소셜미디어 - 上



그리고 4년이란 시간이 흐른 오늘… 몇 마디 추가하고자 한다.



중학교 때까지 함께 공부했던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장애인 치고는 한없이 긴 가방끈. 그의 직업은 변호사이자 두 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냐면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공언하며 다닐 정도다.」 어릴 적부터 그와 나는 생각이 많이 달랐고 지향하는 바도 달랐다. 그 탓일까. 고등학교 때 헤어지게 됐다. 경쟁자가 아닌 그저 각자의 생각이 다를 뿐이었기 때문에 우린 싸울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고입을 준비할 예민한 시기에 한 말다툼 몇 번이 전부다.



그렇게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오랜 시간 각자도생 하며 살아왔는데 한 번은 그의 저서를 연극화 한 공연에 나를 초대했었다. 당시 겨울이었고 또한 움직이기 어려웠음에도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남인지라 서먹할 만도 한데 그보단 어깨를 두드리며 반가워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또 예전 이야기도 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것을. 뭐하면서 지내냐는 친구에 말에 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일을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마치 오르지도 못할 나무 즈음으로 여겼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한켠에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와 나의 차이는 한 번 해보자 vs 그런 걸 왜 하냐의 차이.



넘치는 자신감이 바탕이 된 그의 직언은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그딴 거 그만하고, 사회 속으로 나와! 인마.”



워딩에 거짓은 없다. 100% 리얼이다. 뭐 사회 속으로 나가는 거야 전 세계 모든 장애인들의 숙원이니 그나, 나나 장애인이므로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그딴 거.”라니… (이젠 하려던 그 일보다 글 쓰는 일이 더 우선이 됐으니 뭐라고 할는지…) 상황과 여건이 허락지 않아도 다만 몇 퍼센트의 정열을 쏟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한데 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당시에 그딴 거라는 워딩은 내 인생의 의미를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힘들 게 왔는데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인권 변호사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파들이 꽤 있어 자제는 했지만 어디 어두워지는 낯빛과 흥분이 가득 묻어 떨려오는 음성을 감출 수 있었을까. 그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재빨리 감지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이미 된 거라.”면서 과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멀리 이동한 본분을 망각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연극을 다 보고, 웃는 얼굴로 헤어졌지만 당연히 내겐 그에 대한 앙금이 남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가 EBS의 한 프로그램에 명사 자격으로 출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 날 동시에 알고 있는 여러 친구와 동생 그리고 지인들은 그 친구가 나온 방송 링크를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퍼 나르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멋있다는 호평 일색에다 포화상태에 이를 만큼 공유 수가 많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봤더니, 역시 그의 명석한 두뇌대로 전부 맞는 이야기더라. 그러나 이미 타인으로부터 자주 들었고, 나 조차도 했던 이야기였다. 솔직하게는 그때의 일이 또 떠올라서 조금 언짢았다.



사실 그와 나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 상황이며, 또 난 당시 그의 워딩을 100% 정확하게 다 써낼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역으로 그는 그때 그 일이 있었는지 조차 잊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굳이 그의 얘기를 하는 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넓은 의미로 보면 장애인의 인식개선을 위해 도움이 되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다만 내가 4년 전에 우려했던 닉 부이치치 씨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영웅화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의 매스컴 출연 방식은 지나치게 나쁘게도, 또 지나치게 대단하게도 포장하면 안 된다. 어떤 방식이든 타인에게는 비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대단한 사람은 TV에 출연한 그 친구도 아니고,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아닌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자리에서 아픔을 감내하며, 묵묵히 매일을 사시는 분들이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이고 “이미지를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폰트는 “네이버 나눔 펜”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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