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①
그의 어조에는 왠지 단호함이 가득했다. 친구 K의 말이다. 본인이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를 향한 몰입은 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이유를 들으니 맨날 사랑타령 아니면, 고부 갈등에 마치 결혼이 무슨 인생에 정점이나 찍는 것처럼 묘사한다면서.
팩트 폭행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팩트였기에 더 이상의 토를 달진 않았다. 친구 K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 많은 이들, 아니 나처럼 한국 드라마 역시 잘 챙겨보는 사람조차도 이견은 없을 것 같다.
현재 시청률 40% 대의 ‘미친 시청률’을 오르내리는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그럼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K가 보지 않는 이유로 답한 모든 요소들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왜 이 드라마가 화제일까. 하나하나 뜯어보고자 한다. 굳이 왜 뜯어보느냐고 혹 누군가 묻는다면 ‘지금 시대에 40%라면, 소위 TV 드라마가 잘 나갈 시절과 비교했을 땐 두 배 그 이상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른바 ‘귀가 시계’라고 불렸던 송지나 작가의 <모래시계>와 전국에 애기 열풍’을 일으킨 김은숙, 강은정 작가의 <파리의 연인>의 파급력보다 더 하다는 얘기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 이유는 강수일(본명 김영훈, 최수종 분)의 애잔함이랄까 혹은 한 사람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방식 때문이랄까 흡사 신파 찍는 것 같아서…
그게 내가 이 드라마를 외면했던 이유다. 극한의 상황이라면 과연 어디까지일까. 당신의 생각이 맞다. 극은 가장 비극적인 결말인 살인(殺人)을 서두에 뽑아 들었다. 보지 않아도 훤히 예상되는 흐름. 주인공의 삶이 파란만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일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급성 심장병에 걸린 아내 연이를 살리기 위해 돈을 구하다 그렇게 된 것. 결국 교도소를 갈 수밖에 없던 그는 아내도 잃고 핏덩이였던 딸 도란(유이 분)과도 헤어지게 됐다. 이렇게 되고 나니 볼 필요를 못 느꼈다. 수일은 죗값을 치를 것이고, 필시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을 것이며, 어린아이였던 도란은 성장해서도 까닭 없는 계모 혹은 계부의 괄시를 받을 테니…
속으로 두고 보라고 말하고는 잊고 살았다. 그러다 드라마를 다시 만났을 땐 도란의 성장과정이 이미 종결된 지 오래됐을 뿐 아니라 봄앤푸드 본부장이자 도란의 평생 배필인 왕대륙(이장우 분)과의 결혼도 끝난 상태였다. 예상컨대 어지간히 험난한 여정이었을 것 같다.
한데 그것이 역시나 끝이 아니었다. 주말극의 특성은 역시 며느리를 구워삶는(?) 것일 텐데 아주 제대로다. 도도함과 날카로움으로 총 무장한 시어머니 오은영(차화연 분)은 한참이나 모자란 도란에게 아들 대륙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늘 있는 탓에 며느리를 향해선 늘 시베리아 바람이 쌩쌩 분다. 게다가 끄떡하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바로 이것.
(박금병은 치매 증세가 나타나면 도란을 자신의 여동생 명희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치매 증상을 보일 때 은영과 작은 며느리 장다야(윤진이 분)가 도란에게 해코지를 하면 익숙한 육두문자와 함께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전부 뜯어놓을 기세로 잡아당긴다.)
아무리 시월드라고 하지만 내가 만약 도란의 입장이라면, 대륙에게 골백번이고 더 이혼을 청했을 것이다. 이건 마치 신데렐라? 콩쥐팥쥐? 아니다. 모든 상황이 단번에 역전되는 동화 속 모습 그즈음이다. 동화의 실사판!
이렇듯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요소가 대다수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시청하는 이유가 있다.
이 부분은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알게 되지만 굉장히 클래식하다. 극의 흐름과 묘사 배우들이 뱉어내는 스크립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까지 하나 같이 8~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 뿐이다. 과거로 돌아간 만큼 촌스러운 점이 없진 않으나 요즘 방송되는 SBS의 예능 <불타는 청춘>이 주목을 받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비록 서른 후반이지만 벌써부터 때때로 옛것이 그리운 걸 보면, 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한다.
드라마 자체가 클래식한 만큼 해당 드라마의 출연진 또한 몇몇을 제외하곤 베테랑들이 포진되어 있다. 해서 아무리 클래식한 이유로 조금은 유치할 법한 대사와 감정처리가 나와도 나도 모르는 새 몰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수일과 도란이 마주하는 씬은 언제나 그렇다.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이런 식의 쳇바퀴라는 것. 해당 드라마의 종영은 3월이다. (2018 KBS 연예대상에서 유이 씨의 수상소감 가운데 짐작해 볼 수 있다.) 해서 아직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어쩌면 한국 드라마의 레거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생각해 보자. 어떤 드라마든 무한의 퍼즐 조각을 펼쳐놓고, 제대로 끼우진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진 않았는지. 허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마무리할 즈음이 되면 본디 끝맺음을 위한 정리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마치 애초부터 이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 강수일의 범죄
2. 김도란의 힘든 인생 여정
3. 왕대륙 & 김도란의 결혼
4. 도란이 수일의 존재를 알게 됨
5. 도란의 시댁 식구들이 수일과 도란의 관계를 앎
6. 시댁 식구들의 용서
7. (곁가지) 장고래(박성훈 분)의 게이 해프닝
이 정도 됐으면 보는 이들도 배부르다. 이제는 수일과 도란이 행복할 때도 됐는데 이걸로도 모자란 지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란으로 하여금 친부가 살인으로 인한 전과자임을 알게 했다. 대체 봉합은 어쩌려고 그러는지……
극본을 맡고 있는 김사경 작가는 <오자룡이 간다>와 <불어라 미풍아>의 극본 또한 맡은 경험이 있다. 특히 <불어라 미풍아>의 경우 배우 임수향이 연기한 박신애의 악행이 사람의 도리를 한참 벗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신애의 만행이 온 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그녀에게 내려진 벌은 미비 했다.
다시 <하나뿐인 내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물론 은영과 다야가 수일과 도란에게 지은 객관적인 죄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허나 따지고 보면 실생활을 반영하는 뉴스에선 매일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범죄, 범법이 득실대는데 드라마에서까지 악행이 판을 치고 있고, 더불어 악이 마치 스마트한 것처럼 포장된다.
내주가 궁금해지게 하는 훌륭한 연기 때문에 시청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모두가 미소 지으며 극의 문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 시간을 날려 보내는 것뿐이다. 무성한 사건의 열매를 키우고, 봉합하는 데는 이다지도 어렵게 하면서 최종 스테이지인 살인자의 딸인 며느리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어찌 받아들이게 하려는 건지 궁금하다.
<하나뿐인 내편>은 파지티브(긍정)가 실종된 드라마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 시점에서 과연 그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일개 드라마에 과몰입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실 수 있지만, 드라마라는 건 쉬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다. 다만 그 도구는 인생을 베이스로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다시 나뉜다. 따라서 하나의 도구뿐이기에 각자의 선택에 따라 함부로 다룬다고 해도 뭐랄 사람 한 명 없지만 그 안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반응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하는 본성 때문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왜 울고 웃겠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몇몇 드라마들의 파지티브 실종 현상은 결코 옳지 않다.
본문 이미지는 KBS 2TV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대표 이미지이며 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역시 KBS에 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