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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r 04. 2019

아낌없이 주는 나무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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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 KBS 공식 홈페이지. ⓒKBS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 이제 거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결말이 예상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로 흘러가서 아직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는 해당 드라마를 두고 긍정이 실종된 드라마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달리 말하면 권선징악(勸善懲惡)에 서투른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은 시간이 지나도 동일한데 어떤 점 때문에 그런지 알아보려 한다. 



이젠 지긋지긋한 그 말… ‘살인자의 딸’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하다. 물론 한 집안의 가장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고, 그 누군가가 알고 보니 자신들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더라 하면 그 분노와 배신감이 오죽할까. 현실에선 존재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그 느낌을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람 면전에 두고 ‘살인자’, ‘살인자의 딸’이란 말을 올리는 것은 심히 거슬린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지 않는가.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 호흡마다 살인자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장다야(윤진이 분)와 오은영(차화연 분)은 물론이요. 도란(유이 분)을 친 딸처럼 키웠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소양자(임예진 분)까지. 보통 사람들 같으면 두 번 다시 입에 올리기도 싫은 살인이란 단어가 판치니 급기야는 극의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를 권선징악 프레임에 올려 보면, 강수일(본명 김영훈, 최수종 분)은 이미 죗값을 치렀고, 이 일이 밝혀지기 전에도 늘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만하면 차고 넘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뭘 어쩌라는 건지. 



토사구팽(兎死狗烹) 

2일과 3일, 이틀간 중점적으로 다뤄진 장고래(박성훈 분)의 간경화 말기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고래의 모친인 나홍실(이혜숙 분)은 고래의 방에서 휴지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는 것과 많은 양의 약이 담긴 약봉지를 보고 이게 다 뭐냐며 다그쳐 물었고, 결국 홍실은 고래의 병에 대해 알게 된다.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아무것도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만 오랫동안 안면 몰수하다시피 살아온 동서에게 찾아가 간을 달라 청한다거나 거절당하자, 죽도록 미워해서 쫓아내다시피 한 며느리 미란(나혜미 분)을 찾아가 살가운 목소리로 “미란아.”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록 절박함에서 시발된 것이긴 해도 필요할 땐 상냥하게 대하거나 읍소하다가 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성향을 가감 없이 보인 것은 씁쓸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인간의 저열한 본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교훈을 주려 함이었다면 모르겠으나 다 떠나서 그간 나홍실의 행실은 부모와 자식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위치를 이용한 갑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단순히 눈물의 읍소로만 끝나거나, 다 잊으라면서 퉁 치고 끝낼게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데 극의 흐름상 그럴 리가 없으므로 이 부분 역시 권선징악의 결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미란 역시 간 검사를 진행했으나 적합하지 않았다.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 고래와 그의 가족에겐 한 가지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고래의 수호천사 미란이 염치 불구하고 수일에게 간 검사를 의뢰한 것. 모두의 짐작대로 수일의 간과 고래의 간이 찰떡같이 맞는다. 



허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간을 받을 수 없다는 것. 흡사 무협지 같다. 이번에는 그렇게 대쪽 같던 나홍실도 한 수 접고 들어갔는데 도란과 수일의 연속적 비극의 중심이었던 다야가 이번에도 사고를 친다. 



다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게 된 당사자 고래는 불편한 몸으로 수일을 찾아가고, 간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수일이 진심으로 설득한다. 평생 증오해도 좋고,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제 간을 받아 달라고. 받으셔서 미란이를 위해서 살아 달라고 말이다. 현대판 아낌없이 주는 나무요. 이것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의 마음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수일의 마음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봤다.    



그러나… 

벌써부터 결말이 어딘지 모르게 찝찝할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그간 은영과 홍실, 다야가 도란과 수일에게 저지른 악행은 윤리적으론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법적으로는 벌을 내릴 수 없는 행위다. 그간 울며 겨자 먹기로 무릎을 꿇으며 필요에 의해 용서를 구했지만 그것이 진심 어린 사과였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또한 진심이었다곤 해도 두 부녀가 받은 상처는 여간해선 치유되기 힘든 사이즈다.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으니 쭈뼛거리며 억지로 하는 그런 사과 말고 깨달음이 있는 뉘우침이 있다면 좋겠다. 또 사죄하는 심정으로 평생을 살겠다며 성당이나 절에 가서 지내는 다른 의미로의 도피도 하지 않기를 바라며, 더불어서 그간 수일과 도란이 고생하며 살았으니 합당한 보상이 있길 바란다. 왠지 그냥 1년 후나 3년 후로 넘겨 갑자기 모두가 행복해졌어요 하고 끝날 것 같아서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하나뿐인 내편>을 시청하며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흥미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전개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진 빠지게 하는지 또마 지막 회에 번갯불 콩 구워 먹듯 빠르게 봉합하는 것이 허무하게 만드는지 유념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사가 그렇듯 선과 악의 대립은 한 개인에게도 늘 존재하지만 때로는 그 싸움에서 선이 어렵게 승리하는 것보다 넉넉히 승리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과연 이 바람은 욕심일까. 



본문 이미지는 KBS 2TV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포스터 이미지이며 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역시 KBS에 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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