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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pr 20. 2019

육수… 그 진하고 깊은 맛에 대하여

마흔다섯 번째 B급브리핑

<일러두기>

B급브리핑 글의 형식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님의 ‘앵커브리핑’ 형식을 참조하여 작성했으며, 더불어 이 형식을 빌려 집필하는 것을 앵커님께 허락받았음을 알립니다.



참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이 아프기도 했고, 핑계 같아 보이지만 계절의 노곤함이 저로 하여금 무한의 무기력 속으로 빠뜨린 것만 같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식탁 중앙에는 대부분 국이나 찌개가 빠지지 않습니다. 주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요. 그만큼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국물 요리는 모두에게 친숙합니다. 그러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뭘까. 아마도 국물의 감칠맛을 낼 육수 내는 작업일 것입니다. 개인의 기호와 요리의 종류에 따라 멸치를 넣느냐 아니면 고기를 넣느냐가 갈릴 테지요. 하지만 여기에도 딜레마는 존재합니다. 재료의 신선도와 손질 정도가 국물 베이스의 향방을 좌우하기 때문이죠. 잘못하면 비려지거나 누린내가 진동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요리의 이응 자도 모르는 저도 따질 정도니 미식가 분들은 오죽할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듯 재료의 선도와 손질 같은 약간은 복잡하기도 하고, 때론 치사스럽기까지 느껴질 법한 번거로운 행위를 우리는 왜 할까.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복잡하고 치사하며, 번거로운 그 행위를 거치고 나면 그 어떤 조미료로도 그 맛을 따라 할 수 없다는 것. 멸치의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해서 펄펄 끓는 물에 우려내다 보면 깊은 향이 배이고, 고기 역시 두 개의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때문에 누린내와 비린내의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 맹물 베이스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되레 외면받기 일쑤이지요.



여러분은 이 두 재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그건 바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재료의 맛과 영양이 고루 스며들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해서 그 효용 가치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저는 이 지점에서 엉뚱하게도 우리네의 인간관계를 떠올려 봤습니다. 인간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래 봐야 아름답다죠. 또 어떤 이는 오래 보지 않아도 교감이 잘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두 가지 의견 모두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두 사례 모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어제 자 뉴스에서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서 짤막하게 다뤘습니다. 장애를 등급으로 나눠 처리하는 일률적 복지가 아닌 생활 패턴이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이른바 ‘맞춤 복지’를 시행하라는 요구는 늘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급제는 점진적 폐지라는 쾌거를 이뤘지요. 허나 이것이 과연 쾌거일지는 미지수입니다. 맞춤 복지를 위해선 충분한 재원이 필요한데 그야말로 ‘충분히’ 할애할 수 없고,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현재보다 더 질 낮은 복지 시스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 비친 그들은 넓게는 동지요. 작게는 지인인데 그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보면서 한편으론 안타까우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 개인을 볼까요. 한 번은 어머니와 오후에 데이트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집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상가 지하에는 꽤나 오래된 푸드코트가 있습니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그곳에서 맛있게 먹으려는 찰나 아니, 먹고 있는 와중에도 그곳에 있던 인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습니다. 마치 안전요원이 가드를 위해 어딘가를 쉬지 않고 응시하듯!



그 인파들이 바라본 곳은 저와 어머니 쪽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모르신 채 맛있게 음식을 잡수시던 어머니께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엄마, 나 라이징 스타야! 봤지? 내가 이 정도라고…”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어머니께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셨고, 어머니 역시도 웃어넘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프닝은 저희 모자가 자리를 뜰 때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세상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며, 남들과는 다른 척 하지만 실은 그들 역시 사람이기에 장애인에게 먼저 연락하고 먼저 찾아오며, 함께 부대끼는 일은 어렵기 마련일 것입니다. 겉모습과 재물, 그리고 잘 나가는 이들을 찾아 헤매는 요즘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죠. 이런 현상을 두고 불특정 다수에게 핏대 세우며 몰아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화려함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는 겉모습이나 어눌해 보일 법한 행동을 바라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혹은 얼마나 진국일까를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필시 멸치와 고기는 흐물거릴 때까지 데워져야 비로소 참맛을 알게 된다지만 사람에게만은 일정 부분 생략할 순 없는 것일까. 이렇게 의문형으로만 끝내야 해서 안타깝기만 한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사족 하나를 달아드립니다.



제 브런치 매거진 중 하나인 사랑이라고 쓰고 호흡이라고 읽는다 속 등장하는 대상은 두어 개의 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랑을 언제 시작했고, 언제 끝냈는지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단언컨대 가족 다음으로 가장 사랑했었던 사람임엔 틀림없으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제게 있어서는 그 사랑이 마지막일 것이고, 동시에 최고의 사랑일 것입니다.



허나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하기 몇 해 전, 제 곁에 머물던 또 다른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녀를 향해서는 존경과 사랑의 경계에 서 있었던 같습니다. 그녀가 제게 보내 준 상호 존중과 베풂은 분명 세상에선 결코 흔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날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와서 지금도 타인 중에서 아끼는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그녀를 꼽습니다.



부족한 모습에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고, 꾸밈없이 대해 준 그녀는 “다시 보자…”는 한 마디만을 남긴 채, 꿈을 찾아 유학 길에 올라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감사를 오롯이 표현 못했다는 것이 가장 바보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생일은… 바로 어제였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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