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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Sep 24. 2015

한겨울의 정장

볼 때마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마법의 옷’

나는 제대로 된 정장이 단 한 벌도 없다. 당연하겠지만 어릴 적에는 정장을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활동성 위주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정장은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런 옷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정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으니 결혼식에 갈 일이 자주 생겨서다. 개인적인 사정상 모든 지인의 결혼식에 일일이 참석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갈 일이 생기면 정장이 꼭 필요한데 여태껏 버티고 있다. 기성복은 체형에 맞지 않아 따로 수선을 해야 하고 맞춤은 비싸서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옷이 태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어보지 않고 어떻게 아느냐고 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확실히 앉아서는 속된 말로 ‘간지’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활동성을 제외하고 정장을 입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후배, 친구, 선배 할 것 없이 결혼식이 점점 많아진다. 이젠 고집을 부리려야 부릴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인데 하객이란 작자가 정장 하나 없어서야 말이 되나? 갈 때마다 점퍼 때기 걸치고 가려니 체면도 서지 않고, 예의도 아닌 것 같다. 물론 후배들의 경우, 하극상 죄목을 씌워 궁디팡팡을 해주고 싶지만 그건 식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 ^^ 특히 올해는 늦가을과 겨울에 결혼식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올해부터는 정장을 입을 수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렸을 때 생각으론 정장은 무조건 어른들의 옷이었다. 바삐 뛰어가는 직장인, 드라마 속에 나오는 폼잡이 실장님까지. 정장은 내겐 그런 류의 사람들만 입는 옷이었던 거다. 



어른이 될 줄 모르고 살았고, 평생 엄마 품에 안겨 늦게까지 쭈쭈를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덩치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난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후배들의 결혼까지 살펴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만큼 신체적 성장은 있었는데 마음의 성장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장을 입고 뚜벅거리며 걷는 믿음직한 실장님의 발자국 소리만큼이나 나는 얼마나 사람들에게 믿음직한 존재가 되었는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는 남자 사람 후배들은 턱시도를 입고 한껏 목에 힘주며, 멋을 내보는데 난 그럴 준비가 되었는가. 단순히 때가 차서 부모의 곁을 떠나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존경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책임감 있는 남자가 되었는가. 



정장을 입는다는 것은 아마 이 모든 걸 책임 질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정장의 겉옷이 어두운 단색인 이유는 아마 그 무게를 눈으로 가늠하지 못하도록 가려 주는 것이 아닐는지. 



어쨌든 그런 의미로 보면 난 아직 멀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상황적으로는 거의 무감각한 것처럼 살아야 옳지만 그래도 한겨울의 정장과 코트는 볼 때마다 나로 하여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참… 가만있어 보자. 내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하지? 어떤 식으로 궁디팡팡을 해줘야 하나? 박 뭐시기, 김 뭐시기, 장 뭐시기… 너희들은 다 죽었어!…가 아니고 행복하시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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