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에 거짓 날씨

위로일까 형벌일까

by LOVEOFTEARS



미루고, 미루다가 하루 이틀 남겨 놓고 대충 끼적이는 방학 끝무렵의 일기에는 당연하게도 진짜 감정을 담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감정을 솔직히 담아낼 수 있는 밑바탕인 날씨를 거짓으로 기재하기 때문이다.



때론, 114에 전화해서 그간의 날씨를 알아본다든가, 혹은 감히 내가 조물주가 되어서 5일이나 열흘의 한 번 ”이럴 것이다” 하고 제멋대로 정해 끼워 맞추는 꼼수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사실에는 근접하지 못한다.



거짓 감정에 푹 젖은 채 쓰인 일기는 그럴싸한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크고 깊은 한숨에 얼룩져 이내 포기하고 말게 된다.



그리 되면, 기승전결 없는 뚱딴지같은 마무리들로 채워진다. 부끄러움이 가득 담긴 일기를 어쩔 수 없이 제출하고 나면 선생님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알 수 있다. 속으로는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일기로 받은 상이 꽤 많다.



그때마다 소위 ‘뻥’으로만 일기를 쓴 건 아니다. 그림은 영 젬병이었던 나로서는 텍스트로나마 나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전달해야 했고, 큼직큼직한 칸으로 나뉜 공책의 여백은 마치 시키기라도 하는 듯, 한 장 넘어 두 장. 두 장 넘어 세 장을 쓰게 했다.



일기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방학은 그저 선물 같은 시간으로 두고 싶었다. 그러니 일기 따위가 결코 내 즐거움 위에 군림하거나 자유를 만끽하는 당시의 모습에 먹칠하게 둘 수 없었다. [물론 이는 변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뭐, 그러다가 후회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지만…



이것이… 내가, 한없이 밀린 일기를 몰아 쓸 때 생기는 흔한 풍경을 잘 아는 이유다.



애초에 해내지도 못할 미련했던 몰아 쓰는 일기의 풍경을 재차 떠올리면서 생각해 본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신비로운 감정 앞에서 똑바로 설 수 없고, 제대로 응시할 수조차 없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방관미룸이었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 신호를 깨닫고, 그 빛을 오롯이 받아 몸과 맘의 충만함을 누렸어야 했고



빛이 갈수록 힘을 잃어, 그 양과 세기가 소실되어 갈 즈음에 무언가 했어야 했다. 새롭고 더 밝은 빛이 심어지도록 안간힘을 다해 빛을 피워보든가. 아니면 작고 연약해진 빛을 용납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속절없이 꺼져가는 그 빛에 대비해 다른 대안을 찾든가



무엇을 택하든 결정해야만 했다. 비록 할 수 있는 것이 작다고는 하나 적어도 내 감정에는 솔직해야 했다. 날씨는 내 감정을 결정하기 때문에 일기에 거짓으로 기재하면 안 됐지만,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일으키기 때문에 응당 그랬어야 했다.



시간이 조금의 자비 없이 흘러가듯이, 그에 맞춰 내 사랑의 방향도 늘 점검해야 했다. 그리고 원치 않게 이별의 리듬으로 질주하거든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 버릇 어디 안 간다. 나약한 마음에 사랑의 빛도 한껏 못 누리고 성숙한 이별의 모양도 못 갖췄다. 아마 작별의 기술이 없어서이리라…



지금의 나는 기쁨도 슬픔도 다 버리고 나니 무언가 가득했던 그 자리에, 뜻 모를 구멍만 총총 박혀 있다. 예측컨대 앞으로도 그 안엔 아무것도 채울 수 없으리라.



과연 그 흔적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위한 위로일까. 아니면 사랑 앞에서 방관과 미룸을 일삼았던 자에게 내리는 형벌일까.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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