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Feb 08. 2020

당장, 워크래프트Ⅲ를 돌려놓아라

워크래프트Ⅲ: 리포지드

출처 : flickr



한국시간으로 지난 1월 29일 아침 8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에서는 워크래프트Ⅲ: 리포지드(이하 리포지드)를 출시했다. 리포지드는 과거 2002년 워크래프트Ⅲ: 레인 오브 카오스(오리지널)와 그 이듬해인 2003년 워크래프트Ⅲ: 프로즌 쓰론(확장팩)을 합친 통합판인 동시에, 블리자드 社의 최초 리마스터 작품인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에 이은 두 번째 리마스터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리포지드는 재작년 블리즈컨에서 발표된 바에 의하면, 단순히 게임의 그래픽만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달리, 기존 작품에선 느낄 수 없는 신규 요소를 넣을 것이기 때문에 ‘리마스터’ 대신 새로이 벼려낸다는 의미의 ‘리포지드’란 단어를 넣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를 비롯한 수많은 워크래프트Ⅲ의 팬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왜 그런지 말해보기 이전에 한 가지 사족을 달면, 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있었다.



그냥 근본 없는 욕으로 도배해서 밑도 끝도 없는 분노를 표출할까.

최대한 억누르고 감정을 진정시켜 짧은 글로 아쉬움을 표할까.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한 단어 평으로 갈음할까.

순수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할까.



모든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결론은 그냥 충실히 현재의 생각을 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해서 그 어떤 미사여구나 그에 의한 꾸밈은 없을 것이다. 또한, 내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많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정리가 이루어진 대신 약간의 불완전성과 즉흥성을 가진단 점을 미리 밝힌다.



리포지드의 문제! 그 첫 번째

우리들의 끝나지 않은 2019년



가수 별 씨의 ‘12월 32일’ 같은 애잔한 느낌이 아니다. 재작년에 개최된 2018 블리즈컨에서 리포지드는 발표됐다. 꼭 블리자드의 팬이 아니라 하더라도 게임을 사랑하시는 팬 분들이라면 블리즈컨이란 행사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아실 것이다. 적절한 비유 인지는 모르나 WWE의 ‘레슬매니아’, NBA와 MLB의 ‘올스타전’, 그리고 NFL의 ‘수퍼볼 결승’급이랄까. 암튼 이처럼 블리즈컨은 게임계와 게이머들의 행보를 좌지우지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8년의 블리즈컨은 모두에게 악몽 그 자체였던 것.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라는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선보인 블리자드에서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게임인 디아블로를 중국 기업에 외주[1]를 맡긴 것도 모자라 PC가 아닌 모바일로 만들고, 출시 발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현장에서 목도했기에 침묵밖에 할 수 없는 팬들에게 던진 그 한마디. “여러분, 전화는 다 갖고 계시잖아요?” 이른바 님폰없 사태.



리포지드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팬들의 가슴을 데워줄 마지막 수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행사 당일 발표된 모든 게임 중, 가장 주목도가 좋았던 것이 리포지드였다. 시네마틱 영상 말미에 빼도 박도 못하도록 큰 글씨로 쓰인 2019년 12월 31일 이전 출시 문구는 그냥 ‘신뢰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만 했다.



블리즈컨 2018 이후 한참 뒤, 약속한 출시 날짜를 몇 달 안 남긴 그 상황에도 블리자드는 태평했고, 여유로웠다. 왜, 덕질도 오래 하면 흡사 탐정인 듯 촉이라는 게 오지 않나. “언제쯤 굵직한 발표가 있을 것이다.”,  “이때쯤이면 베타 테스트 일정은 나오겠지.”하는 어림짐작이 들어맞을 때가 있는데 이건 도대체 뭐가 없어도 정말 없었다.  



그러다가 빠듯해도 이렇게 빠듯할까 싶은 일정인 10월 중순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베타의 윤곽을 보이고,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베타 일정을 진행했다. 진행 과정을 보면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내가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딱히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해가 바뀌어 2019년 블리즈컨이 열렸는데도 그들의 여유로움은 한결같았다. 마치 시계의 배터리를 빼놓고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보였달까. 무조건 연내 출시한다 같은 워딩은 분명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었다. 여유 만끽하며 긴 시간을 보내다가 부랴부랴 만들었고, 해서 출시일은 2020년 1월 29일로 바뀌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아는 이들은 하나 같이 2019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다.



리포지드의 문제! 그 두 번째

최적화야 어디 갔니?



꿀 같은 1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을 때, 그들은 과연 반성하고 있었을까. 짧다면 짧은 1년이지만 그 시간 동안 개발에 매진했다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내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게임 팬들은 다 안다. 블리자드란 기업이 액티비전과 손 잡기 시작한 후부터 얼마나 큰 눈보라를 맞았는지.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를…, 개발 인력이 줄줄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나름 애는 썼겠지만 본래의 정체성을 찾을 만한 인재는 이제 몇 없다는 것을. 그리고 리마스터를 담당할 클래식 팀의 인원 또한 많지 않으리란 것을…



그러나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분명 개발팀은 충분한 계획하에 진행했을 테니까. 막상 뚜껑을 연 베타의 실체는 참혹했다. 블리즈컨 2018 당시 재생됐던 트레일러 영상에서 보인 신박함은 어디로 가고, 속된 말로 후져졌으며, 로딩은 길었고 순간순간 발생하는 렉은 참담했다. 특히나 그래픽적인 부분은 베타 초반엔 논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였으니. 개발진도 당연히 이 점을 알고 있었으리라. 다행히 패치가 거듭될 때마다 그래픽과 안정성 모두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출시가 된 지금, 그래픽과 관련해서 몇몇 부분에선 2018년에 선보인 트레일러보다 나아진 구석도 있긴 하지만,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란 평이 대부분이다. 하다 못해 한 외국 유저가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가상의 리포지드가 유튜브로 공개됐을 땐, “이게 진짜 리포지드 같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이니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한 유저가 언리얼 4 엔진으로 재현한 리포지드 모델링. 출처 = 유튜브 AXCEL 채널.



출시 이후 최적화 부분을 더 이어가 본다. 현재 리포지드는 CPU가 싱글 코어만 동작한다. 21세기가 시작되고 어물쩍 20년이 흘렀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CPU를 비롯한 컴퓨터 관련 부품들의 발전은 놀라울 따름이다. 따라서 CPU 코어의 개수 역시 늘어난 건 당연지사. 한데 싱글코어 Only라니… 이것이 최적화 부족의 증거이다. 또, 캠페인 모드 플레이 시 일정 구간에서 리포지드의 요구 사양을 너끈히 넘을 사양임에도 프레임 드랍이 있는 등. 게임 내 적 문제들이 참으로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더 읽을거리

출처 : 퀘이사존 



리포지드의 문제! 그 세 번째

지켜지지 않은 약속… 그리고,



리포지드가 환호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다. 단순히 겉모양만을 바꾸고 새롭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뼈대를 바꾸고 유저들로 하여금, 기존작에선 느끼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것은 나아진 그래픽과 한글 더빙뿐. 나머지 약속했던 새로운 유저 인터페이스, 새로운 컷신 같은 리포지드에서만 경험할 법한 많은 요소들이 배제됐다.



웃프게도 캠페인 내 몇몇 컷신 대사들이 폰트가 겹치거나 혹은 오타가 존재해서 꼭 외계어처럼 보인다. 이는 한국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따람라, 깐프, 기끊이같은 문자가 출력되는 문제의 경우, 정식 출시한 지 10여 일 만인 어제(2월 7일) 패치로 인해 일단락됐다.



따람라! 관련 유저 스크린샷. 왼쪽은 정상이고 오른쪽은 버그. 출처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인벤. 게시자 = Syurup 회원 님.



마지막으로

쓰다 보니, 2002년과 2003년 당시에도 잘하진 못했지만, 유즈맵과 캠페인 시나리오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했던 애정 듬뿍 담긴 게임을 두고, 독자 여러분으로 하여금 문제 투성이로만 보이도록 쓴 것 같아 죄송하지만, 이것이 리포지드의 가감 없는 현주소다. 오죽하면 메타크리틱 스코어가 도입된 이래 최하 점수인 0.5의 점수를 받았을까.



어릴 적 꼬꼬마였던 즐거운 내 벗은, 신체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나 그 안엔 온통 상처투성이뿐이라서 도저히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태이다. “리포지드는 제대로 벼려내지지 못한 채, 추억 속으로 버려졌다.” (어떤 유저 분 말을 인용하였음)




이번 리포지드 사태를 정면으로 목도하면서 느낀 점 하나는 과거의 영광을 구현하려면, 당시에 쏟은 노력의 양보다 몇십 몇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하건대 이제 리마스터는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 주기를. 만에 하나 리마스터 가능성이 있는 디아블로Ⅱ를 다시 손대려 한다면, 온 정성을 다해,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신뢰를 쌓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돌아서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찌 보면 블리자드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탓을 외주 업체에게 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주를 주는 행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개발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제대로 요구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내 오랜 친구 블리자드여…, 당장 워크래프트Ⅲ를 돌려놓아라!”    



[1] 본문에도 언급했듯 외주를 주는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허나 디아블로:이모탈의 경우, 디아블로Ⅲ를 표절한 게임사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본문 이미지의 출처는 Flickr이며, 구글에서 수정 후 재사용 가능 필터링을 거쳐 검색됐습니다.


본문 영상의 출처는 유튜브 AXCEL 채널입니다.


본문 이미지의 출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인벤이며 게시자Syurup 님이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