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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pr 17. 2020

우리의 삶과 지우개의 공통점

생각해보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글은 경어체입니다.



우리 인생은 지우개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10달을 지내는 아이의 안정감은 아마 짐작건대 천국에서 맛보게 될 평화의 서막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가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지요. 우습지만 그 요인이 양수 때문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지우개 또한 처음 구입하면 모난 구석 없이 매끈하잖아요? 왠지 모르게 새 지우개를 보면 학구열도 솟는 것 같고… 저는 그랬습니다.



그런 경험들 있지 않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큰 마음먹고 좋은 지우개를 샀는데 더럽히고 싶지 않은 마음. 연필심의 원료인 흑연이 검은 터라 조금이라도 지우면 지저분해지니까요. 이 무슨 놈의 주객전도인지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새 지우개를 사면 글씨 하나라도 틀리지 않으려 용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다 일 획, 내지는 한 글자가 틀려 결국 지울 수밖에 없을 땐 눈을 질끈 감지요.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지우개가 흑연과 한 몸이 되고 더 이상 깨끗한 모습이 아니게 됐을 땐, 아꼈던 지우개가 아니라 그냥 지우개 나부랭이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사람의 소유욕은 찰나입니다. 지독히도 바라다가 마침내 얻었을 그 당시에만 잠깐 소중하고 후에는 별게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어찌 보면 부질없는 욕구인지도 모르지요.



아 참! 제가 꺼내고 싶은 말은 소유욕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시 돌아와서, 서두에 우리 인생이 지우개와 같다고 했지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태어날 당시에는 티 하나, 상처 하나 없다가 세상이란 무대 위에 서면 그때부터 갖가지 이유와 사연을 가진 상처들이 생겨나죠. 처음엔 말끔했던 피부 위에 낯선 상처가 덩그러니 있으니 왠지 나 자신이 안됐고 짠합니다. 그런 마음에 소독도 하고 연고도 이중으로 덧 발라보기도 하지요. “빨리 나아라 빨리 나아라” 하는 얼핏 들으면 주문인 것 같기도 한 외마디 허밍도 해보고요.



한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같은 자리에 상처라도 나 보세요. 주문이요? 어림도 없습니다. 오히려 짜증만 나지요. “에이 씨, 또 다쳤어. 앗 따가워!”



게다가 어디 상처란 게 같은 자리에만 나나요? 아니죠. 그저 여기저기 동서남북 물불 안 가리고 상처는 나게 되어 있잖아요. 상처 나는 일이 잦아지고 하다 보면 대수롭지 않을 뿐 아니라 귀찮잖아요. 한 번 생각해 보자고요. 점점 지저분해져 가는 지우개와…, 사람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느낄 상처에 대한 둔감함. 비슷하지 않나요? ^^



거기다가 지우개도 오래 쓰면 어떻게 됩니까? 점점 닳아지지요. 또 좋지 않은 지우개들은 어떻고! 댕강 잘려나가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필통에 두 동강 난 지우개를 가지고 다녀야 하잖아요. 사람도 늙으면 몸속 어디라도 닳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 인공 장기 같은 것을 시술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태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는 한편으론 죄송하고, 또 한편으론 감사를 전합니다. 사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 바 된 인류 최고의 걸작품인데, 그런 걸작품의 여정을 지우개와 비교하니 보기에 따라선 폄하 했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런데요. 제가 귀한 인생을 지우개 따위와 비교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과 다른 생명체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제 생각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느 분들은 다른 생명체도 좋고 싫음은 있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는데, 물론 그렇습니다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봤을 때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라 할지라도 사람보다 오색찬란한 감정을 지닌 생명체가 있을까요. 제 생각엔 단연코 절대! 네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뀝니다.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는 잠들 때 빼고. 아니! 어떤 이는 꿈속에서조차 감정의 명확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많은 경우에 웃어야 할 때 절제하고, 울어야 할 때 삼키고, 분노가 치미는데도 꾸깃꾸깃 집어넣지요. 그것이 큰 사람이고 문명의 혜택을 받는 자들이 행하고 지켜야 할 규율인 것처럼 생각하지요. 그 결과 많은 이들은, 당연하게 여겨야 할 감정의 이치를 귀찮아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상처 받은 감정들에 우리가 할 조치는 고작 삼켜 버리거나 아니면 오장육부에 알코올 샤워하는 것뿐. 소주나 맥주… 물론 고급진 누나와 형들은 양주로! 



하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한 번쯤은 여태까지 해 온 방법들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감 없는 감정 상태를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맨 정신에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좋아요. 반복되는 사용에 의해서 흑연 자국 가득해진 거무죽죽한 지우개 신세가 되기 전에 꼭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바 된 사람이라면 필시 신체와 함께 공존하는, 마음 역시 소중할 테니까요.



고백드리면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꿀꿀했거든요. 감정의 흐름을 컨트롤 못해서요. 뭐, 그건 제 탓일 수도 있고 타인의 탓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오픈할 순 없지만 어딘가 서러웠어요. 남들은 의연함만을 요구하고 극복만을 요구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의 거리가 먼 타인들뿐이겠는가 하는 실망감. 그런 류의 것이었죠. 내 감정에 대해 인정 못 받는 듯한 그런 것. 해서 최대한 풀어지지 않으려고 오늘은 경어체로 찾아왔네요. 제가 잘 나서 이런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고 알려 드리고 싶었달까. 



어차피 이 역시 지나가리라 하고 넘겨야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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