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브런치에 입성한 지 1728일이 흘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4년 8개월 22일이다. 해당의 날짜 기준은, 내가 브런치 작가로서 첫 글을 발행한 날이다. 그렇게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3일 전까지 총 472개의 글을 썼다.
브런치 이전에도 이미 한 매체에 기고와 칼럼을 병행해가며 글을 쓰고는 있었지만, 특정 기준이나 요구조건 같은 것이 있어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서 늘 아쉬웠고, 물론 목마름 또한 존재했다. 한데 브런치는, 글 안에서조차 해방감을 느낄 수 없었던 내게 기준과 분량이라는 굴레를 삭제시켜 주었다. 그저 가능만 하다면, 널따란 흰 바탕에 무한한 활자를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리고 또한 좋았던 것은 나 같이 이름도 빛도 없이 떠도는 남루한 글 유목민들에게도 기회를 선사해 훗날 작가 데뷔의 등용문이 될 수 있도록 도운다는 점과 (다음… 現 카카오의 관대함 클라쓰!!) 동시에,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셀럽 분들도 이 곳에 속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연유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한편 두렵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 작가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 갔다. 일례로 내가 브런치를 알게 된 계기도 김 관 기자 님의 글 때문이다. 김 관 기자 님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진도 팽목항 현지에서 꽤 오랜 시간 취재하셨던 분이라 한창 뉴스에 집중하고 있던 나로서는 무척 낯익은 이름이었다.
열망으로 똘똘 뭉쳐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때부터 일주일 간은, 당시 꾸준히 기고하던 타 매체에 집필을 쉬면서까지 나름으로는 브런치 입성 전략을 세웠다. 전략에 대한 고민은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이어졌다. 주제의 선택과 이야기하고 싶은 논점, 그에 따라 강조할 말은 무엇이 있을까 등. 그렇게 나름 치열(?)한 일주일을 보내고, 마침내 심사위원들께 평가받을 두 꼭지의 글을 보냈다. 그러고는 완벽하게 마음을 비웠다. 언제나 당락의 기로에 서 있을 때면, 낙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심사에 소유되는 시간은 일주일이었지만 예상보다는 짧은 4~5일 만에 결과를 통보하는 메일을 받았다. 사실 본래보다 한 2~3일 전에 받은 것이긴 해도 어찌 기다리는 입장에서 왜 속이 타지 않았겠는가. 조심스레 받은 편지함으로 마우스를 가져 가 제목을 클릭한 그 순간, 눈 앞에 결과가 놓였다. 유예도 아니고, 꽝… 다음 기회에도 아닌 합격이었다. 어안이 벙벙.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멍했던 기억이다.
이른바, [브런치 베타] 시절 멤버이긴 하지만 당시에도 경쟁률은 심히 셌기 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좋은 건 좋은 것. 최대한 많은 글을 쓰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브런치라는 브랜드의 이름처럼, 언제나 읽을 만 하지만, 소화하기는 쉬운 글을 추구했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퀘스천 마크로 두고, 독자 여러분들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까놓고 말해서 브런치를 통한 수입은 일절 없으나, 그저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마치 모 기업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회사에 뼈라도 묻겠다는 결기를 어필하듯이, 난 무언의 결기를 그동안의 글을 통해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되도 않는 말들을 내뱉는 원 코멘트 글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4년 8개월 간의 열심과 결심을 바탕으로 꾸준히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브런치 내에 자리한 통계라는 메뉴에서 볼 수 있다. 통계 메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학창 시절 성적표와 재회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뭐랄까, 분명, 낙제는 아닌데 흐뭇하지는 않은 그런 기분. 그러다가 친구 아무개의 것을 갈취하다시피 해서 비교해 보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그것. 브런치의 통계가 내게 딱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브런치 앱을 통해 <Do You Like It?> 이란 이름으로 추천되는 글들은 대부분 조회 수 폭탄 이야기 아니면 출판 계약 이야기다. 알고리즘 탓이겠거니 싶다가도 막상 조회 수 관련 글을 본 일이 그리 많지 않은데 아이러니다.
아무튼, 요즘 들어 더 많이 보이는 걸 볼 때, 누구랄 것도 없이 집필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회 수 관련 글에 첨부된 사진들을 보면, 100만, 200만까지 쭉쭉 뻗어 오른 탓에 그래프가 꼭 하늘까지 침범할 기세다. 새삼, 대한민국 사람은 참 다양한 분야에 재주가 뛰어남을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하면 내 통계는 참 한산하다. 물론, 나라고 조회 수 폭탄 터진 일이 전무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바라기는 현재보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서 이를 계기로 유명 작가로서, 도약하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고백하자면, 곧 40만 뷰를 목전에 앞두고 있다.(꽤, 남았긴 하다) 사실 무명작가로서 특별한 계기 없이 40만 뷰를 기록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써 온 시간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수치는 아니기에, 어찌 보면 브런치 작가로서의 성적표라고도 할 수 있는 통계 메뉴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또 출판 계약 글을 마주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해코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남들은 날개 달고 순항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도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이상이 내가 브런치를 처음 만나고 좋아했던 이유와, 작가로서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브런치에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4년 8개월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한 탓에 브런치가 걸어온 그간의 발자취는 잘 알고 있다. 그 여정을 오롯이 함께하며, 때론 박수도 쳤고, 메일을 통해 아쉬움도 토로했지만 오늘은 과거보다 더 상세히 남기고자 한다. 이 곳에 남기는 이유를 짧게 설명하면 현재 브런치는 오직 고객지원 서비스를 통해서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그러려면 개인 연락처까지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번거로운 감이 있다. 해서 조심스럽지만 이 공간에 남긴다.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브런치는 무명의 필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집필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은 왜일까. 이름의 가치보다 글의 퀄리티를 우선적 가치에 둔다는 방증 아닐까. 왠지 필자라고 하면 헝그리 정신이 배어 나와야 작품의 순수성도 유지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 내가 예전에 브런치 초창기 때 느낀 감정은 그랬던 것 같다. 허나, 당시 브런치의 마음이 현재도 동일한지에 대해선 살짝 의문이 든다. 현재 브런치의 속한 전체 작가님들 수는 약 159만 명에 이른다. 세월로 보나 규모로 보나 그때와 절대적 비교를 해선 안 되겠지만, 아무튼 브런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지점은 연간 두 차례 이벤트로 열리는 브런치 북 프로젝트 그 무렵인 것 같다. 대상과 금상 은상에 이르기까지 다 대단하신 분들이고, 필력 또한 놀랍다. 당연히 받아야 할 분들이 수상하셨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브런치의 홍보 정도다. 수상을 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와 보상은 받아야겠지만, 브런치 북 이벤트가 진행되면 될수록 입상 작가들의 대한 홍보가 너무 많아진 것 같았다. 브런치 PC 메인, 다음, 브런치 앱,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까지… 브런치를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수상자 분들의 글이 전부 전면에 배치됐다. 뭐, 그것도 수상 특전이겠거니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심하다 하고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언제였냐면 위클리 매거진 도입 시점 때였다.
위클리 매거진을 집필할 권한을 부여받은 작가는 출판의 기회를 얻었다. 방법은 브런치팀 에디터에게 선택받는 것이다. 선택받은 작가는 에디터와 회의를 거쳐 출판하게 된다. 서비스 도입 초반에는 위클리 매거진을 집필하기 위해선 이 방법만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유저들의 요청이 많아졌고,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후부터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겼다. 브런치가 세운 자체 기준에 부합한 작가들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기억나는 대표적 요건 중 하나는 구독자 1,000명이다. 이를 포함한 몇 가지 기준에 부합하면 서비스 초기 때보다는 기준이 완화됐다. 물론 여전히 에디터의 선택(Pick)과 회의가 남아있는 것은 같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종전보다 기준이 완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내겐 높은 산이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 역시 비슷한 애환이 있으셨는지 위클리 매거진은 유저들과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함께하고 사라졌다.
위클리 매거진은 당시 유저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이었다. 위클리 매거진 역시 홍보가 과했다. 브런치 북 수상 작가들의 입지와 위클리 매거진 작가들의 입지가 연일 올라가면서 나 같은 작가는 설 자릴 잃었다. ㅠㅠ…… 위클리 매거진의 폐지 이후, 수정 보완해서 론칭한 것이 바로 현재의 브런치 북 매거진 서비스다. 그렇다. 연간 두 번 개최하는 브런치 북 이벤트와 동명의 서비스이다.
그런데 아쉽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전신인 위클리 매거진처럼 어떤 자격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필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 매거진에 담겼던 글을 브런치 북 매거진에 옮기면, 그동안 해당 글이 얻은 조회 수 및 공유와 같은 기록이 전부 사라진다는 점이다. 또 하나, 브런치 북 매거진의 담긴 글은 문자 그대로, 작품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하다는 것이 브런치 측의 설명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의 대한 철칙 중 하나는 [세상에 좋은 글은 있어도 완벽한 글은 없다.]인데 생각해 보시라! 언어와 글이 가지는 차별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고칠 수 없지만 글은 지울 수가 있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말보다 글이 나은 점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글을 작품으로 여겨 한 땀 한 땀 소중히 다루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정할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한 것은 참 아쉽다. 글의 수정 역시 필자의 고유 권한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발행한 브런치 북 매거진이 마음에 차지 않아 없애게 되면, 그 안에 들어있던 글들은 브런치 북 매거진에 싣기 이전 모습. 즉 조회 수나 공유 수 같은 기록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 글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일반 매거진에 넣으려면, 하나하나씩 손수 재투입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한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나는 브런치 북 매거진을 신설하지 않는다. 내 글은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남루하고, 보잘것없어서 퇴고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어딘가 빈 구석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래서 또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사랑해주신 천사 같은 마음씨의 독자 여러분들과 했던 교감의 역사를 초기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런치 북 이벤트는 이제, 브런치 북 매거진으로 묶은 글들로만 참여할 수 있다. 일반 매거진으로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는 지난 브런치 북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브런치 북 서비스에 대한 재검토를 강력히 부탁드린다. 또한 최소 추천 글만이라도 단지 몇 분만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골고루 노출시켜 주셨으면 한다.
쓰다 보니 아쉬운 점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은 것 같아, 글 쓸 기회를 허락해 준 브런치팀께 면목이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과 비난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것은 다 이곳을 향한 애정이 있어서다. 얼마 전 글을 통해서도 밝혔던 것처럼 전 세계 지구촌이 코로나19로 힘겨워하고 있는 요즘이라 넷플릭스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 내 경우만 생각했을 때는 넷플릭스 보다 브런치가 한 수 위다. 그도 그럴 것이 브런치에 머무는 시간이 넷플릭스에 머무는 시간보다 3배는 많을 테니까. 작자에게 무한한 종이를 선물해 준 브런치는 작금의 시간을 보내는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나와 같은 맘을 느끼실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선물하는 보석 같은 서비스와 기업이 되길 바란다. 지키기 힘들지만, 늘 처음처럼… 늘 변화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
본문 이미지는 브런치 캡처 화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