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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Feb 23. 2021

내 친구는 KOF 클랜 마스터

내 친구는 KOF 클랜 마스터. 사용 폰트 = 네이버 나눔 에코 ExtraBold.



며칠 전에 스팀이 설 세일을 했다. 사고 싶은 게임이 많았지만 결국 내 눈에 들어온 가장 저렴한 게임을 골라 구입했다. 그 게임은 「포트리스 V2」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게임이다. 국산 게임의 클래식! 스타크래프트의 열렬한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 포트리스! 스팀 판이 서비스되는지 모르고 계셨던 분들을 위해 잠시만 설명하자면, 웹 게임으로써 비교적 최근까지 서비스되던 포트리스 레드가 종료됐다. 그런데 그 종료 시기가 작년 12월 말일쯤이었고, 스팀으로의 론칭 시기에 맞춰 기존 서비스를 종료했던 것! 암튼 지금은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어쨌든, 내가 「포트리스 V2」를 구매한 데에는 그저 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지울 수 없는 벗과의 추억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 학교로 전학 왔던 친구는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탔다. 전학을 오면 소개 같은 걸 하기 마련인데 제 이름 석 자 이야기하기도 꺼려하던 녀석이었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고, 우린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던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온 교내가 그의 목소리로 떠들썩했고, 풍문으로 들은 바로는 스쿨버스가 그의 메아리로 가득 찼다고 당시 탑승자들이 입을 모아 증언했을 정도다.



특수학교를 다녀 좋은 점 중 하나는, 오랜 친구와 이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머리가 커 가면 갈수록 더욱 지랄스럽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ㅋㅋㅋ 그렇게 나는 그 친구와 고3 졸업 때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당시엔 스타크래프트의 열풍이 거셌다. 게임 방송만 틀면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던 시절이었으니 말 다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집필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프로게이머를 꿈꿨을 만큼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다. 때문에 당시의 흐름이나 풍토가 내겐 정말 좋았다. 그런데 친구는 그런 풍토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당시, 게임 방송사를 온스타넷, MBC 스타라고 비아냥댈 정도로 스타크래프트를 지겨워했다. 그런 그가 한 번은 포트리스 2를 하자고 하더라. 당시엔 포트리스 2 블루 시절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친구와 내가 플레이한 당시부터 ‘블루’라는 부제가 붙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인지 여부는 희미하다.



암튼, 당시에 나는 스타크래프트에 흠뻑 빠져 있던 때라 포트리스 2는 이름만 들었지 생소했다. 한데 자기 혼자 몇 번 해보더니 웬일인지 같이 하자고 조르기까지 하더라. 생전 뭐 하자고 먼저 조르거나 달려드는 타입이 아니었던 터라 생경했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얼떨결에 포트리스 유저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멀티태스킹에 약한 나는 한 우물만 계속 팠다. 그 한 우물은 캐논 탱크였고, 이른바 빨콩 더블을 과도하게 좋아한 나머지 친구에게 그것만 한다면서 면박을 들은 바도 많다.



생각 없던 사람 끌어다 놓고 면박을 주다니… 뿐만 아니다. 바람을 못 본다느니 각을 볼 줄 모른다느니 하면서 주야장천 읊어대던 녀석. 스타크래프트 패배로 얻은 치욕을 2배로 갚는 기분이랄까! ㅋㅋㅋ



하루는 메신저로 급히 불러서는 한다는 말이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클랜을 만들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였다. 평소에는 그냥 하면 되지 클랜까지 만들어서 할 일이 뭐냐며, 꼰대 같이 굴던 녀석이 클랜이라니 해가 서쪽에서 뜬 건 당연했고, 제대로 빠졌다. 그전까지 항상 우리끼리 3인 개인전을 하고, 또는 모르는 사람과 게임을 하며 실력을 키워가더니 결국, 제대로 재미 들려서는 그런 결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클랜 이름을 정하는 일부터 홈페이지를 어떤 형식과 어떤 툴로 제작할지 등 모든 걸 고민했다. 특히나 클랜 이름 같은 경우에는 한눈에 띄어야 한다며 어찌나 생각해 보라고 채근하던지.  

     


결국, 내가 내놓은 아이디어 전부 보이콧하고는 기어코 지가 작명하고야 말았다. 이름하야 King of Fortress! 줄여서 KOF. 케이오에프 클랜이었다. 물론 당시의 난 클랜 명이 썩 달갑지 않았다. 이유는 KOF라는 약자가 타인들로 하여금 자칫  오브 파이터즈라는 격투 게임과 혼동될 수 있다는 것. 그도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하긴 했지만, 자기 머리로는 이게 최선이라며, 그럼 네가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따져 물었다. ^^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클랜 명을 King of Fortress로 정하고, 표기를 [KOF]로 정했으며, 클랜 마스터인 그 친구는, [KOF]은빛~* 부마스터인 다른 친구, [KOF]살인앞니(돌출된 구강구조를 이유로^^;;) 평민인 나, [KOF]티어스(당시엔 본명을 썼다.) 이렇게 3인 멤버로 클랜이 출범하게 됐다. 그때가 아마 그가 적극적이었던 몇 안 되는 순간들 중 하나일 거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참 재미있었다. 그가 하교를 위해 버스로 향하면서 생기에 가득 차서 하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야, 컴퓨터 켜면, 메신저 접속 해!” 그렇게 포트리스로 모이던 우리 셋은, 졸업할 때쯤 다른 게임으로 저마다 흩어졌지만, 졸업 후에도 그와 당시 얘길 나누며 웃곤 했다.



그런데 졸업한 지 2년 후쯤 지나서일까. 그는 꼭 제 아이디처럼 밝은 ‘은빛’ 날개를 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떠나기 한 달 전만 해도 다른 친구 생일 파티에서 봤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었던 거다.



이런 이유로, 포트리스 하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그래서 스팀에서 처음 포트리스 V2를 봤을 때, 눈물이 나더라. 그런 의미에서 다시 포트리스 2에 접속하는 날이 오면, 그를 추억하는 의미로 아이디 앞에 [KOF]를 달까 한다.  



그리고 오늘은, 그가 천국에 간 지 꼭 16년째가 된다.



영원한 20대! KOF 클랜 마스터 은빛… 난 지금도 그가 이따금씩 그립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삶의 물줄기 매거진에 몇 번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 또 기록하는 것은, 오늘을 그냥 보내는 것이 참 미안해서다.



나의 벗, 나의 동생아! 보고 싶다. 곧 보자!!~



본문 이미지에 사용된 폰트 네이버 나눔 에코 ExtraBold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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