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 달 전쯤엔 올려야 했을 글인데 지금에서야 올린다.
어릴 적 설날의 풍경을 떠올리면,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음식과 색동 한복,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 생각에 풍성했던 날이었다. 동그랑땡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명절엔 없던 입맛도 생겼다. 또 꼬까옷 입자면서 한복을 입혀주시던 부모님의 손길이 좋았다. 게다가 정말 많이 사랑했던 할머니를 뵐 생각에 설렜다. 비록 내 몸이 불편해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든 큰집 방문길이었지만, 힘듦보다 예의가 우선이셨던 부모님의 성정에 나는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기사 따르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난 되레 좋아했던 풍경인데.
우리 집은 내가 다 클 때까지 친가와 외가 방문하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렇게 좋아했던 풍경이 언제부터인가는 지독히도 싫어졌다. 아마 사춘기 시절 혹, 그 전부터였을지 모르겠다. 나 하나 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셨던 아버지의 기력이 이전 같지 않음을 느끼던 순간부터, 친 손자를 자신처럼 사랑하신 할머니께서 부자유스러운 내 몸을 볼 때에 반가움과 애잔한 슬픔이 공존한다는 걸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게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신다는 걸 캐치했을 때부터.
그리고 어른들께 드리는 세배가… 그 어설픈 몸놀림이 어른들로 하여금 부모님을 안쓰러운 존재로 느끼게 할 수 있음을 안 순간부터 명절이 싫어졌다. 할 수만 있으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가기 싫었고 더구나 세배는 정말 하기 싫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마흔을 목전에 둔 현재의 나는 어김없이 설날을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의 요인도 있고, 한없이 푸근했던 할머니께서도 천국에 계시고, 이젠 결코 적은 연세가 아닌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집에서 명절을 보내야 한다.
게다가 나 역시 점점 심해지는 몸 상태 때문에 이제는, 과거에 나 스스로가 그렇게도 혐오했던 몸놀림의 세배 대신 목례로 드리는 세배로 대신해야 한다. 그렇게 난 최대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아버지와 엄마께 세배를 드렸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이 면구스러울 정도로 해드리는 것 아무것도 없는 나.
적어도 복을 빌어 드릴 만큼 효도를 해야 될 것 아니겠나. 아니, 효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제 앞가림이나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은…
그렇게 올해도 드리지는 못할망정 되레 부모님께 세뱃돈을 받았다. 받지 않겠다고, 당장은 쓸 일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결국 봉투는 내 바지 주머니에 담겼다. 참 많이 속상했다. 그 속상함의 이유는, 어릴 적 어설픈 세배의 몸짓이 떠올라서도 아니요, 오늘날에 건방지게 목례로써 세배를 간소화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늘 부모님께선 다 괜찮다시며 자식에게 무한히 주시려는 마음. 어찌 보면 그 미련스러운 마음이 뭔지 짐작하는데, 그저 그 모두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이제 속상한 마음은 잠시 거두고, 바람대로 천사 같은 우리 부모님과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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