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힘듦을 보상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
욕조에 물을 가득 담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물이 빠지는 시간은 초고속이다. 음식이 식어버리는 시간은 빠르지만 식어버린 음식을 다시 데우려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놀이공원에서 자이로 드롭을 타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쾌감을 즐기는 시간보다 길게 늘어진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과 지상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간의 합이 훨씬 더 길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은 삶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이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든 건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길다는 것이리라.
게다가 순식간에 결정 나는 결과의 향방이 중요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이라면 모르는데 인생을 건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과정이란 곧 노력이고 노력은 곧 시간 소비이다. 어떤 분야에 시간을 쏟았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이 아닐 때는 마치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도전 자체의 의미를 두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도전이 무의미해질 땐 인생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정말로 힘들다.
세상에 힘듦이 왜 존재해야 하며 그게 왜 나에게로 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포기하지 말라고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는 위로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있으면 네가 해보든가 하는 어깃장도 놓고 싶다. 남들보다 수천 수만 배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좌절감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매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내며 깊은 한숨이 내 오장육부를 감싸 안아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괴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마치 생사의 기로의 놓인 독수리 한 마리가 삶의 2막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 발톱을 스스로 바위 위에 부딪히고 모든 털을 다 뽑아내 이전 보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이 매일을 견디며 산다.
누군가는 내게 대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지질한 인간의 한 부류에 내가 속해있다. 내가 가진 십자가가 결코 작지는 않다. 그러므로 난 지금부터 밥을 3일간 굶고 계속 떠들어도 다 표현하기엔 모자라다. 하지만 내가 지인들에게 그리고 내 글을 보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것은 절대로 잘 나서가 아니라 나 역시 고통에 허덕이는 한 인간에 불과하므로 내가 하는 이 말을 보시거나 듣고 약간의 위안을 삼으라는 의미이다. 꼭 한 번 이 기회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욕심이 있다면 마지막 숨을 내뱉는 그 순간까지 내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와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오늘의 힘듦을 보상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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