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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Sep 29. 2015

장애의 온도

낄끼빠빠 라이프

사랑의 온도는 용광로처럼 뜨겁다. 이별의 온도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얼어붙을 정도로 시리다. 그렇다면 장애의 온도는 어떨까?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저자인 김원영은 장애의 온도를 따로 정의하지 않았다. 다만 할 수 있다면 가만히 앉아 희망을 읊조리는 차가움보다 세상과 맞서는 뜨거움이 좋다고 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그는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공언하지만 내 대답은 ‘글쎄올시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와 중학 동창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장애의 굴레가 크긴 하지만, 뜨거운 욕망으로 장애의 굴레를 벗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나 역시 동감하긴 하지만 일부분만 동감한다. 사실 장애인은 차든 뜨겁든 계속 어느 한쪽만을 유지할 순 없다. 때로는 차갑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뜨겁기도 해야 한다. 흔히 하는 요즘 말로 낄끼빠빠 즉,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물론 불가능이 가능보다 많긴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 봐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냉정과 열정의 심장을 내 보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나마 있는 가능성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것이 경우의 수를 따지는 건데 장애인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머릴 굴려야 한다. 



그래서일까?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제법이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초연의 증거이다. 초연이라는 것. 남한테 보여주려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삼십 줄이 되었으면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성이 시키는 냉철한 판단과 가슴이 시키는 펄펄 끓는 열의가 섞여 나의 모습은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형태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살아 온 장애인으로써의 삶이다. 성경은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권면 하시지만 그건 믿음의 문제이고 미지근한 삶, 다시 말해 낄끼빠빠 라이프는 누구도 비난 못할 생존 전략인 셈이다. 



훗날 김 작가가 이 글을 읽는 날이 오면 적절한 반론을 할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겠다! Come On 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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