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미디어의 경계에서…
내년이면 벌써 30대 중반이 되는 시커멓고 덩치 큰 남자이지만 나이와 성별에 어울리지 않게 강한 신뢰를 갖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거짓으로 얼룩진다고 해도 사랑은 ‘진짜’라고 믿는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사람과 사람의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어도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本質)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볼 때에도 남녀의 사랑을 다룬 멜로 장르를 즐겨 보며, 음악 또한 애절한 발라드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건 아마도 추측하건대 나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어쨌든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 항상 느끼는 바가 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애절하다는 것과 그 애절함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런 게 진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것이 외부적 영향에 의해 무너진다면 그건 정말 서러울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영화, 드라마, 음악 같은 소위 미디어 때문이라고 탓을 돌린다고 해도 난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인정을 넘어 옹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래 들어 난 점차 미디어의 사랑과 현실에 사랑이 정말 많이 다름을 새삼 깨닫는다. 미디어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아무리 화성과 금성에서 온 것처럼 달라 보여도 결국 뿌리는 지구인인지라 한쪽에서 진심을 보여주면 끝내는 다른 한쪽이 알아 줘서 해피엔딩이 된다.
예컨대 이승환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의 가사 속에는 사랑을 받은 그 대상은 은혜를 입고 산다고 여길 정도로 감사한 삶을 살고, 나라는 존재가 상대를 붙잡고 있기에도 놓아주기에도 모자란 그런 상황임을 노래하고 있고, 김형중의 ‘좋은 사람’의 가사 속에는 상대가 좋으면 나도 좋고, 상대가 웃으면 나도 좋은 그런 바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설령 그게 이별(離別)의 수순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미디어의 사랑과는 달리 진심을 보여줘도 결국 내 곁으로 오지 않을 때가 있고, 잡아 두기에도 놓아 주기에도 모자란 건 맞으나 이별의 강을 건너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웃는 것을 마냥 행복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다.
만일 견뎌낸다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매일 울음을 삼키며 그렇게 조금씩 이겨내는 중이리라. 분명히 말하지만 사랑은 리얼이다. 그러나 그 리얼함 때론 거짓일 수도 있다.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몇 번이고 본 영화 <노트북>처럼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 내 심장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에게 꺼내어 주었기 때문에 타인에겐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그런 삶…. 그런데 때로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 들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그 역시 사랑임을….
본문 이미지는 영화 <노트북>의 스틸 컷이며 ‘네이버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