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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Oct 04. 2015

2년 전에 쓴 드라마 감상기

KBS 드라마 ‘굿 닥터’




저는 31살의 한 청년입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나이지만 전 그렇지 못하네요. 물론 이것 또한 일반론에 불과합니다만 어쨌든 말입니다. 저 역시 시온(주원 분)처럼 평범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은 아니지만 뇌성마비(Cerebral Palsy)와 함께하고 있지요.



시온과는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는 낯설지 않지만 제 생각과 바람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제약이 따릅니다. 오랜 세월 장애와 함께해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부터 그랬지요. 하지만 아직도 이따금씩 제 마음속엔 안타까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아마도 그건 인생의 경륜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인지 전 국내의 다큐나 드라마들 중에서도 장애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무리 ‘리얼’을 표방해도 방송에서 묘사되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새드 코드(Sad Code’)로만 분위기를 잡지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더 이 악물고 살아갑니다.


비록 오늘의 내가 남루한 삶을 살아갈 지라도 더 나아질 내일의 나를 그리면서요. 저 또한 그렇고요. 제가 믿는 그분께서 항상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엔 굿 닥터를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말 어느 날 재방송을 보게 됐는데 여느 다큐나 드라마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빠져들게 됐습니다.


사람이 가진 편견이 사람과 사람을 융합하게 하는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새삼 또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극 중 부원장님(곽도원 분)은 안경을 끼고 계십니다. 그리고 시온은 안경을 끼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는 눈뿐만 아니라 사람 몸 전체를 보는 능력 역시 세상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그런데 세상은 눈이 좋지 않은 부원장님을 보지 못하고, 시온에게 ‘모자란 놈’이라고 조롱합니다.


더러운 것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배설하는 배설물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 된 가치관이 더러운 것입니다. 작가님은 이와 같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있음을 알리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굿 닥터를 보게 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저의 인생철학이기도 하고 타인에게도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함께함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자란 존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서로 함께하여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것이 정말 큰 가치이기 때문에 신께서 그렇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장면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김도한 교수(주상욱 분)는 겉으로 보이는 부드러움은 많지 않지만 시온이 필요할 때 강한 어조로 어드바이스 해주는 모습에서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조건 혼내고 다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좋은 말들을 해 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지표가 됩니다.


윤서(문채원 분)는 어떻습니까? 말할 것 없죠.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제나 시온을 믿고 응원해주는 사이. 특히나 둘이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힐링 그 자체입니다. 둘의 관계는 관계성의 이상(理想)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이 밖에도 의국 식구들과 기타 환자들의 시온에 대한 강한 신뢰는 관계가 가져다 주는 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시온의 좋은 에너지에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도한과 윤서는 물론이고 의국 식구들과 고 과장의 놀라운 변화는 제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그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한 사람의 진심과 정성이 그 어떤 모습을 가진 자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는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놀랍게도 그와 같은 가르침은 어릴 적에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성경 말씀과 일치합니다.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과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주라는 어머니의 성경적 가르침은 놀랍게도 시온의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 제가 속한 교회 공동체와 제 지인들에게 최대한 위로와 힘을 건네기 위하여 애를 쓰지만 그 영향력이 미비해 시온의 에너지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온이 했던 윤서에 대한 고백은 100% 공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놀릴까 봐 못했다는 고백 말입니다. 사실 놀리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게 우려 섞인 말을 꺼내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당당히 고백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말을 못 꺼내는 것은 그녀가 나 때문에 고생할 것을 알기 때문에 고백조차 못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진실은 통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투박하고 별 것 아니지만 그 어떤 화려함을 덮을 만한 윤서를 향한 시온의 고백이 뜨거움으로 윤서에게 다가갔던 것처럼요. 저도 언젠간 그렇게 되겠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굿 닥터’는 제게 또 다른 충만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건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런 좋은 에너지가 빨리 식을 것 같다는 아쉬움입니다. 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굿 닥터’를 보는 내내 장애인을 정말 잘 아시는 듯한 작가님과 좋은 연기를 보여주신 출연진들을 한 번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가능할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현실이 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조금이나마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드라마 만들어 주신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남은 두 회 즐겁게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났던 근이영양증(Progressive Muscular Dystrophy : PMD)과 늘 함께했고, 
지금은 천국에 있는 친구에게 이 드라마와 이 글을 바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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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KBS ‘굿 닥터’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안타깝게도 제작진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진 않았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언제 한 번 다시 시청하고 싶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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