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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Oct 17. 2015

깊은 밤의 혈투

나의 패배

선잠에 뒤척이다 깨어보니 여기저기 간지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가려운 정도는 모기 놈의 소행이 분명했다. 손이며 발이며 물어 재끼지 않은 곳이 없다고 느낄 만큼 가려움의 고통을 느꼈다. 그런데 더 스팀 샐 만한 일은 뭔지 아는가? 아, 글쎄 이 녀석이 ‘난 아직도 배고프다’며 내 주위를 얼쩡거린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 모기에게 있어 나의 체취(體臭)는 한없이 매력적이고, 내 피는 꿀 송이보다도 달다. 나는 모기에게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인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환절기라 자고, 또 자도 피곤한 내 육신에게 딥 슬립을 제공해 줘야 하는데 감히 방해하다니 게다가 그만큼 마셨으면 됐지 더 달라고 생떼 쓰는 이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혈기도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때는 새벽 1시 반이었고, 부모님과 형 모두 깊은 잠에 열중하시는 때여서 “엄마, 아버지, 형!”하고 부를 수 없었다. 가족을 부르는 건 항복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침 전화기는 옆에 있어서 빛은 그냥저냥 확보가 가능한데 정작 중요한 파리채가 없었다. 아니 비밀 살상 작전을 하는데 플래시만 있고 총칼이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이해가 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일 파리채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한들 휘두르기도 전에 약 올리면서 피신할 ‘그 녀석’을 생각하니 소용없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내가 잡는다고 이죽대면, 그 순간부터 두꺼운 이불을 걷어차야 한다. 홀로 이불을 걷어차는 게 가능하긴 해도 다시 덮으려면 생 쇼를 해야 하는 터라 차라리 속 편하게 그 녀석 존재를 잊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모든 걸 단념한 그 순간, 내 뇌리에 한 영화의 장면이 스쳤다. 바로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내 사랑 내 곁에>였다. 영화에선 루게릭 병에 걸린 주인공 김명민이 모기를 잡으려고 애쓰는 씬이 있다. 모기가 뺨 위에 앉게 되자 얼굴을 씰룩거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생각해 보자. 다 큰 사람, 게다가 지각 있는 청년이 자신의 뺨에 앉은 모기를 잡아보겠다고 얼굴을 씰룩거리는 행위… 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소위 쪽이 팔려도 스스로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 장면과 내가 새벽에 겪은 일이 지나치게 많은 부분 겹쳤다. 



생각 주머니가 닫히고 난 후, 나 혼자 중얼댔다. 



“내가 모기보다도 못 하다니… 껄껄….” 



센티멘털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우스웠을 뿐… 나는 비록 영화 속 김명민의 캐릭터 마냥 얼굴을 씰룩거리며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 오히려 더 빨아대라고 놔뒀지만, 내겐, 가려움의 고통보다 가족들의 숙면이 훨씬 더 중요했다. 



당신이 힘든 거 다 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그리고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잠시 잊고 당신이 모기나 파리를 쫓아낼 정도의 신체와 물렸어도 약을 바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감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2009年 作>의 스틸 컷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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