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약 1분여간. 국지적인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아니라 지역 일대에 울리는 사이렌. 이런 사이렌 소리는 육지의 도심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민방위 훈련을 위한 사이렌 소리. 갑자기 무슨 일인가.
제주도민이 된지 7개월, 매해 4월 3일 아침 10시에 제주4.3 희생자를 위한 추념의 사이렌소리라는 걸 이제야 안다. 직접 들어서 안다.
육지 사람들에게 전쟁을 대비한 대피 훈련인 민방위 훈련의 긴급성은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는 안다. 4월 3일 오전 10시의 사이렌도 제주도민들에게 그런 의미 아닐까? 긴급성 보다는 상징성으로다가.
제주도 전역에 울렸을 것이다. 바닷가 해녀들, 중산간의 예술가들, 제주 신도심의 아파트 거주민들,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들렸을 것이다.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의 희생과 슬픔과 분노를 떠올렸을지도. 예민한 감성으로 4.3에 대한 관념을 키우고 있을지도. 무심하게도 매해 한 번 으레 있는 일로 여길지도. 그저 슬픈 과거로만 치부하고 말지도.
유적지 초입의 안내판
제주항 뒤로 야트막한 오름 두 개가 있다. 둘 중 오른편에 있는 작은 오름이 별도봉인데, 별도봉 옆에 이른바 “잃어버린 마을”이 있다. 충분히 예상할만한 수사이다. 마을을 잃어버렸다니, 스산함을 넘어 공포스럽지 않은가. 거기 살던 사람들은?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은 4.3유적지이다. 이 마을은 해안가에 있다. 4.3 당시 소개작전은 해안으로부터 수키로미터 떨어진 이상의 중산간부터 인줄 아는데, 제주 북쪽의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 마을에 무슨 학살이 벌어졌던 걸까?
곤을동 마을의 오른편에는 건천이 있다. 건천 너머 원당봉 까지는 비교적 너른 형세의 땅이고 해안이 마을 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의 형태이다. 옛사람들이 바닷가를 끼고 마을을 형성하기 좋을 땅이다. 오손도손 모여 살았을 것이다.
걸어서 다닐 만한 거리이다. 곤을동에서 원당봉까지 거리로 6킬로? 옛사람들은 그리 걸었을 것이다. 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부족한 것은 보태고 남는 것은 나누면서 바다와 바람과 한라산이 주는 것들에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돌담만 남은 곤을동 마을터
잃어버린 마을 내에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아직까지 돌담으로 분리된 집터가 20여 호 남아있다. 돌담 안에는 초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돌담들 사이에도 작은 올레가 있다. 이웃들끼리 빠르게 다녔을 요량으로 만들었겠지.
곤을동 유적지 내에서 별도봉의 암반을 따라 사라봉 쪽으로 돌아가면 큰 바위가 나온다. 지금은 벤치가 설치되었는데 이곳에 살았던 옛사람도 이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봤을 것 같다. 약간 움푹하게 패였고 조망이 좋다.
이 곳에서 바다를 바라봤을 옛 마을 주민들
상상은 여기까지. 서툰 공감이 감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애절한 감상으로 소비될 만한 것이 아니다. 4.3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이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민간인들이 수만명 학살당한 사건이다. 설령 살아 남은 피해자들이 시간이 지나 모두 사망하는 날이 올지라도 제주도민들에게 DNA처럼 남은 역사일 것이다.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은 삼양동에 사는 내가 걸어서도 갈 만한 거리에 있다. 아니, 걷기에는 좀 멀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봤다. 요즘들어 말하곤 하는데, 제주4.3이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예술혼을 알리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도 조심스럽다. 행여나 글줄이나 쓴다는 내가 제주4.3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조.
제주스러운 기념비, 거욱대
이 글이 조금은 가볍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은 그런 이유이다. 곤을동 마을에 대한 감상어린 묘사는 4.3을 도구로 삼지 않으려는 마음, 보다 더 제주도민의 마음으로서 쓰는 것이다. 역사를 회고하는 관점은 다양하다. 끝나지 않은 역사는 조금 더 사려깊어야 하지 않을까. 당사자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뿐이지만.
그런 면에 있어서 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4월 16일이 가까워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유적지 건너에는 제주항이 있다. 그곳으로 도착했어야 할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죽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