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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티 Yaaatii Apr 15. 2022

인류의 기원에 대한 존중심 어린 태도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 삼양동 선사유적지에서


 제주도 이주 후 자리 잡은 지역은 ‘삼양동’이라는 지명을 가졌다. 제주의 동쪽 방향으로 도심과 촌락의 경계선에 있는 지역이다. 삼양동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집을 구했는데 명백하게 경계선에 위치한 건물이다. '나란 사람 자체가 경계인으로 살아왔는데, 집마저 경계선에 있다니 이 무슨 운명이냐?'는 클리셰를 기어이 쓰고 만다.  

    

 저 쪽으로는 새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반대편으로는 제주 특유의 돌담이 둘러진 밭이 펼쳐진다. 거실 창문을 통해 섬 안쪽 방향을 바라보면 제주를 한 바퀴 두르는 순환도로 1132번 일주도로가 가까이에 뻗어있고 반대쪽 주방의 창문으로는 삼양 해변의 바다가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은 한라산으로 향하는 완만한 능선과 올록볼록한 오름들을 볼 수 있고 제주항으로 향하는 커다란 배들도 볼 수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게시된 ‘연세’ 기준의 집인데 양쪽으로 펼쳐지는 제주 고유의 풍경에 홀딱 반해서 더 알아볼 것 없이 계약을 하고 이사를 마쳤다.      


제주 연삼로 도로에서 바라 본 겨울의 한라산


 집 바로 앞에는 ‘삼양동 선사 유적지’가 있다. 이사를 마치고 바로 박물관을 찾았다. 90년대 후반, 일대의 필지 구획 정리 중에 대규모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제주도지사의 선견지명으로 일대가 문화재보존구역으로 지정이 되면서 대규모 개발이 저지되고 제주 고유의 문화유산 발굴 및 보존과 기념의 공간으로 남게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시관 내에는 선사 시대의 일부 시기에 만들어진 도구들을 정리해 두었다. 유물들을 발굴한 땅 속을 모형으로 만들어 둔 공간도 있다. 전시관을 나와서 잔디밭으로 나가면 선사시대의 움막집을 재현해 두었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만든 인형들도 있다.


 ‘선사’라는 단어는 ‘역사’라는 단어의 상반된 개념을 갖고 있다. 인간이 기록하여 남겨 둔 시기를 ‘역사’라고 한다면 선사는 문자로 기록하여 남겨 둘 수 없던 시대의 시기를 말한다.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서만 당시 사람들의 삶을 추리해 볼 수 있다.      


선사유적지 전시관 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등의 단어를 기초교육과정에서 듣고 난 후에는 따로 공부한 기억이 없다. 진화론에 근거한 과학을 교육 받은 가치관대로 인류의 기원을 받아들이는 개념이 선사 시대의 개념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투철한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화’해왔을 인류-라는 개념은 썩 달가운 말이 아니다. 넉넉하게 7,000년이라는 시간 안에 인류의 창조와 현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탄소 연대 측정 기술’은 불완전한 인간의 기술일 뿐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나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 ‘창조’라는 이론을 더 믿는 편이다. 내게는 절대전능의 조물주가 우주를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 하나의 점이 폭발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보다 조금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더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믿을지언정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축적해 온 학문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처럼 다소 나태한 입장이 아니더라도, 발견되고 있는 오래 된 유물이나 유적들이 나름의 기술과 연구를 통해, 언제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였으리라는 측정과 추리를 한 결과에 대해서는 인정과 동시에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것을 긍정하는 공부여야만 한다.


삼양동 선사유적지 전시관 내


 선사 시대의 분류 방법에 대해 배웠다면 발견되는 유물들이 일정한 경향성을 띄는 것에 대해 나름의 합리적인 연구와 공부를 통해 나의 사고방식과 맞춰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 등의 밀림 오지에서 여전히 돌도끼를 통해 사냥과 수렵을 하는 원주민들이 최근까지 발견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대인들의 선사시대 분류법의 가정이 틀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깨달음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근대화 교육에 대한 의심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의 점진적 변화의 축적이라는 개념의 입장에서 절대전능한 조물주의 존재라는 건, 터무니없는 신화적 상상의 산물로 여겨질 것이라는 점도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 스스로 기대하는 것보다 더 광활한 능력을 가졌다.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인간은 저 스스로의 정신적 필요에 의해서 신과 종교를 만들었을 뿐이다.

 

 


 선사유적지 내 움막집 모형 앞에 서 있는 선사시대 사람들 인형 앞에서 들은 생각이다.      


 그들은 제주의 거센 자연환경에 맞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바람이 자주 많이 분다. 한라산은 연중 많은 날들 동안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여 있거나 맑게 흐르는 개천이 없어서 물을 마시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돌은 무겁고 크기만 하다. 날씨가 좋을 때,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서 바다 위에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해변 앞에 현무암 돌을 쌓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사라봉과 원당봉 사이 화북동과 삼양동 지역, 옛 지명으로는 ‘서흘’이라고 불리웠을 이 지역은 예로부터 제주에서도 용천수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는 이야기를 전문가에게서 들었다.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 해변 이곳 저곳에서 물이 솟아 올라오는 데 그게 용천수가 올라오는 것이라 한다. 제주에 살았던 이른바 선사시대의 사람들도 우선 ‘물’을 마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터를 잡았을 것이다. 부족을 이뤘을 것이다. 제주에서도 북쪽 지역이니 육지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좋을 위치이다.  


집 앞 발굴현장

    

 선사시대부터의 오랜 생활의 터전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까지도 발굴된다. 집 근처 여기저기에서 유물과 유적 발굴이 한창이다. 신기할 뿐이다. 수천년 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현재에도 발견한다는 것은 내게 보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으로 이주한 곳이 대한민국의 최남단 제주도이다. 최남단 제주도 그 안에서도 오래 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많이 남은 삼양동에 터를 잡았다. 옛 사람들의 본능적인 생존의식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다. 나는 이 곳에서 다시 삶을 이어간다. 그들이 돌도끼를 사용해서 양식을 구했던 것처럼 나도 최소한의 도구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선사시대 유물, 시체보관 항아리


 서울에서 소유했던 고급승용차나 도시적 생활이 사치였다는 걸 이 곳 삼양동에서 더욱 깨닫는다. 선사유적지 내의 시체를 보관하던 항아리가 영험하기라도 한 것일까?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일까. 잠잘 때 머리를 두는 곳과 그 항아리는 직경 1킬로미터 거리가 안 되는데 진짜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인류의 발전은 자유를 향한 뜨거운 의지에 의해서였다. 종교적 속박에 대한 해방과 지식에 대한 열망의 마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글자를 인쇄하여 의식의 혁명을 가져왔고 발달한 의식이 시민의식이 되어 정치적 해방을 이뤘다. 지식과 자유를 얻은 인류는 폭발적으로 지성을 발휘했고 그로 인해 더욱 큰 사상적 자유와 경제적 진보를 이루었다. 설령 인간이 오랜 시간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화된 존재의 일부라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 낸 학문이고 유산이다. 유산을 보호한다는 건 보편적 윤리와 도덕에 마땅한 태도 아닌가.      


 제주 삼양동 선사유적지 내에서 생각한다. 자유로의 의지, 분별력 있는 학문적 태도, 치우치지 않는 사유,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에 내포된 힘을 직시할 줄 아는 시각 등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오래 살아야 100살이다. 100살의 가치관과 사유와 통찰력으로 인간과 우주와 진리를 사유하기란 불가능하다. 수 천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고 발견된 고고학 유물들보다 미천한 존재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겸손할 뿐이다.   

   

 이 거대한 우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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