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증후군, 착한 아이 증후군, 예스맨

좋아. 그래. 네. 맞습니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by 뒤틀린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매번 애써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던 사람이 나에게 "네가 다 된다며?" "말 똑바로 안 해?" "앞으로 너랑 대화할 때 어떻게 믿니?" 라며 역정을 냈다. 평소 분노조절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이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구글 검색 창에 휴머노이드 증후군, 착한 아이 증후군, 예스맨을 내리 검색했다. 이거 다 내 얘기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평소 크고 작은 부탁에 거절을 잘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를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게 멋이었다.

다음 날 시험이어도 친구가 술을 마시자고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일이 많아 매일 야근을 해도 연인이 놀러 가자고 하면 밤을 새워 일을 하고 놀러 갔다.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어 잊지 못한 밤을 만든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남는 건 망친 시험과 놓친 장학금이었다. 짬을 내서 겨우 간 여유 없는 여행은 안 가느니만 못했다. 죄책감과 마음의 짐만 쌓여갔다.

상생하지 않는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경험하며 깨달았다.


그래도 조금씩은 변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위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감당하지 못하는 부탁을 거절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친구와 술자리 대신 혼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점차 양성 피드백이 되었다.

나에겐 어른이 된다는 건 거절을 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나에게 누군가 예 아니요 선택지를 물어볼 때 3초 잠시 고민하는 게 싫었다. 뭔가 시원치 않은데? 상대방이 서운하지 않게 바로바로 대답했다.

대화를 할 때,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좋아. 그래. 네. 맞습니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를 남발하고는 뒷일을 수습했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나머지는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는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서 마음먹고 솔직하게 답 할 때도 있었지만 능청스럽지 못하고 너무 단호하게 말한 나머지 "아, 그냥 내가 참을걸"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항상 후회했다.


솔직하면서 능청스러울 수 있을까?

나의 무한 공감이 대체로 서로 잘 들어맞았다면 좋았겠지만 작은 부분에서 어긋나 쌓인 오해가 관계를 끝낼 때가 많았다. 그것이 드러나는데 5년이 걸린 관계도 있었다.

남을 속이면서 하는 비즈니스나 연애를 통해 많은 이익을 취한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누군가 100억을 준다고 해도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디 솔직해지려고 한다. 상대방이 떨떠름하지 않으려면 조리 있게 말을 해야 하는데 솔직한 내용을 전하려다 보면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자꾸 말을 흐리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능청스러움이 필요하다.


부드럽지만 당당하고 확실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사고 싶은 욕심이 드는 동시에 그의 요구사항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겨 부딪힐 때, 불확실함에 대해 당당하고 확실하게 어필할 것이다. 부드러우면서 솔직하게 어필하는 말을 연습해보려고 한다.

예외가 있다면 인생을 걸고 할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을 때, 내 커리어에 큰 기회가 왔다고 생각이 들거나 평생을 바칠 사람이 나타났다면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 무엇이든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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