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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재벌집 아들의 일기(2025/4/1)

나보고 잡스럽다고??

by 조운생각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난 인생을 게임처럼 살았다.

어려서부터 울 집에서 일하는 청소 아줌마, 정원 관리사, 요리 이모, 운전기사님에게 이것저것 시키면 다 알아서 해주셨고, 집으로 오시는 각과목 선생님들과 공부를 진행해서 그런지 숙제도 없고 내가 잘하는 것 위주로 집중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국어에 나오는 소설들이 재밌었고, 과학에서 특히 화학분야는 원리만 재밌고 분자식은 따분했다. 체육은 우리 집 체육관에서 매일 오후에 하는데 체육쌤이 내 또래 아이들을 몇 명 데리고 와서 진행한다. 빠델, 골프, 펜싱, 그리고 가끔씩 서바이벌을 하는데 페인트탄으로 상대를 맞추면 그 느낌이 정말 짜릿하다.

모든 것이 나에게만 집중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삶을 살아왔다. 장점은 내가 누군가와 딱히 경쟁이란 걸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었다. 단점은? 모르겠다. 없지 않을까? 아, 하나 있다.


뭐 하나 딱히 잘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난 두루두루 다 잘한다. 좀 잡스러울진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어느 정도 상급 수준으로 잘하다 보니 고등학생인 나에게 누군가 ‘넌 뭘 제일 잘하니?’라고 물으면 좀 당황스럽다. 요리 이모님이 맛있는 요리를 해서 식탁에 놓아두시는데, 그걸 한 입 먹어보고 맛있으면 그릇째 들고 가서 이거 요리하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해서 바로 배운다. 체육쌤에게 태권도를 배우는데, 720도 돌려차기를 보여주시길래 나도 배우겠다 해서 3일 만에 터득했다. 여자친구? 그런 스킬? 그런 거엔 별로 관심 없다. 언제든 원하면 가질 수 있는 건데 굳이 내가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아직 어려서 인생을 잘 모른다고? 글쎄. 모르는 건 당신 아닐까?


열여덟 내 인생을 평가하기엔 좀 이르지만 난 그동안 알차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것저것 많이 경험해 보고, 좋아하는 것 있으면 즐기고, 싫은 것은 안 하면 그만이지. 그러다가 혹시 내 평생에 집중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일이 생기면 그동안 내가 배운 모든 잡스러운 지식과 경험들을 결합시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철학쌤이 가르쳐줬다. 인생에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모든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여 에너지가 되고, 어느 순간 방향성이 생겼을 때 한 곳으로 집중력 있게 그 에너지들이 발산된다면?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바로 인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사상(형이상학) 혹은 발명품(형이하학)이란다. 내 생각엔 칸트와 아이폰 정도쯤 될 것 같다.


그 이름이 뭐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아이폰 만든 사람. 그 사람도 고생깨나 많이 했다더라.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고, 불량 청소년에 학교도 잘 안 갔다고 한다. 양부모 설득에 간신히 대학을 들어갔는데 1학기만 다니고 중퇴. 그래도 학교는 다니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들만 청강하면서 잡다한 지식을 쌓아 올렸다. 아, 생각났다. 그 이름


스티브 ‘잡스’


그와 나의 공통점 = 잡스럽다

내 잡스러운 인생 경력에 동기를 빵빵하게 부여해 주는 아저씨다. 난 계속 이렇게 살 거고 이런 나를 사랑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오늘은 4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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