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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믿음일까, 착각일까

결론은 내 맘대로

by 조운생각


긴장되는 철학 시험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무슨 문제를 내실까?

의자 하나를 가져오시더니 그걸 교탁 위에 ‘탁' 올려놓으신 교수님은 칠판에 문제를 적으셨다.


지금 교탁 위에 의자가 없다는 사실을 논증하라



학생들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역시 이 교수님, 이럴 줄 알았어.

그동안 배운 존재론, 인식론을 총동원해 본다. 회의주의와 언어철학 등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떤 식으로 글을 써내려 가야 할지 마음속으로 대충 개요를 짠 뒤 펜을 들려는 찰나,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 교수님께 시험지를 제출하더니 강의실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이 시험지를 살펴보니 답은 깔끔한 한 줄로 적혀 있었다.


“무슨 의자 말씀이십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은 진짜일까?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놔버리면 그 폰은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진리일까?
정말 땅으로 떨어질 것이라 믿는가?
내가 믿는 진리와 믿음은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그 경험을 중력 구조가 다른 우주에서 하게 된다면?
진리와 믿음이 바뀌는 걸까?
내가 믿고 있는 수많은 과학, 종교, 상식은 과연 절대적일까?


끝이 없다. 이런 식으로 가자면.


‘위’라는 개념은 누구를 중심으로 한 개념인가? 달에서 봐도 '위‘가 맞나?

'의자’의 정의는 무엇인가? 사람이 앉기 위해 만든 다리가 있는 가구 맞나? 어린아이에게는 점프를 하기 위해 올라서는 계단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있다'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나는 눈을 통해 ‘있음'을 확인하지만,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어떻게 '있음’을 확인할까? 착시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정말 내가 보는 것을 다 믿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내가 믿는다’라고 할 때 그 믿음은 사실에 기반할까 오해일까?


모든 것을 회의할 수 있는 그대여,

환영한다.

진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으니.


우리는 믿음이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건물 위에서 벽돌이 떨어질 때 그것이 내 머리를 향하고 있다면 난 그것을 피해야 한다. 그 벽돌이 내 머리를 가격하는 순간 난 저 세상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그 벽돌은 진짜 벽돌인가? 중력은 확실히 위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게 맞는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우주적 관점에서 위아래 개념이 다르고, 벽돌의 정의가 문화마다 다르다 할지라도 적어도 나는 내가 경험한 과학적 사실이 오늘도 변함없이 나에게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더욱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의 액셀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자판기 음료수는 돈을 넣으면 나올 것이다.

길을 물었을 때 그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가면 될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니, 그도 나를 사랑할 것이다.


일상의 예는 무수히 많다. 그것들은 진리가 아니다.

때론 자판기에 돈을 넣었는데 음료수를 내어놓지 않아 나를 열받게 하고 급기야는 자판기를 흔들다 못해 옆통수를 가격하기도 한다.

내가 수년간 사랑했던 그가 어느 순간 돌변한 경험은... 너무 아프니 그만 말하자.


믿음을 배반한 사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왜? 믿어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에 믿는다. 종종 배신당하면서도 열심히 믿는다. 확률을 믿는다. 대부분의 경우에 먹히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당신이 나에게 “그 의자는 존재하지 않아! 그걸 믿다니, 당신은 정말 바보 같아!"라고 아무리 외쳐도 상관없다. 그것이 일종의 착각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지금,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렇게 단순화하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믿는 것들의 그 모든 출발은 ‘내가 그것을 믿기로 한 선택’에서 비롯된다.

결국 나는 나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어제 분명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기지개를 켜며 웃음 짓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나라는 존재가 ‘다시 믿어보기로 결정했다’는 판단 때문이고,

그건 결국 나를 믿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이라는 것이 허구일지라도, 내 믿음을 좌절시키는 여러 일상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존재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내 모든 믿음의 시작점은 나다.


아, 그래서 데카르트가 이렇게 말한 거였구나… 이제 깨달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거 맞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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