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쉬운 줄 알아?
톨스토이.
이 형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1. 귀족이었고,
2. 약간 건강했고(전쟁에 자원해서 나갔고 이 형한테 걸린 적은 뼈도 못 추렸어),
3. 재산이 좀 있었고(형 소유의 땅이 우리나라 3분의 1 크기였어),
4. 머리도 살짝 좋아서 철학 과학 수학 종교를 공부하고는 자신 있게 ‘그거 내가 다 한 번씩 살펴본 것들이야’라고 말할 정도였어.
5.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는데 형이 책을 써내면 다음날 절판되는 정도?

딱 감이 오지?
인싸, 영웅, 천재, 갑부, 작가
응, 그거 다 합친 게 이 형이야.
간단하게 이해 됐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선언을 해.
야, 나 이제 감자 심을 거야.

잠깐만 형, 뭐라고?
잘 나가던 귀족에서 ‘현실도피 농부’로 급전환!
“돈 많고, 명예도 있고, 책도 잘 팔리는데, 왜요?”
누가 물어보니까 형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마음이 안 편해.”
아니, 형이 마음 안 편하면 우린 뭐가 되냐고요 ㅠㅠ

하지만 형은 진심이었다.
태극기 휘날리.. 아니, 수염 휘날리며 땅을 파고,
구두 대신 짚신을 신고,
심지어 자신의 명작들 저작권도 포기하고...
“나는 이제 진짜 삶을 살 거야.”
그럼 그동안 가짜로 산 거야?
그의 말년에 적은 참회록에 보면 솔직한 고백들이 나오는데
그는 자신과 얼추 비슷한 경지에 있는 사람들로
솔로몬,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등을 꼽았다. (헐)
다 해봤다 이거지.
그런 형이 주장하는 바는 아주 간단하다.
“돈 없이 사는 삶이 진짜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진짜 종교는 사랑이고, 그 외엔 다 뻥이다.”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돈이 많은 그를 가족들 특히 아내가 가만두지 않자
급기야 82세의 나이에 가출을 감행한다.
이 놀라운 실행력을 보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국
어느 기차역 지하실에서
감기에 걸려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이 형도 지금 현실을 거부하는 건가?
무엇이 그리 불만인 걸까...
톨스토이는 그 누구보다 현실에 안주하기에 적합한 사람 아닌가?
우리 형 이해를 좀 해줄라치자면
자기 자신도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어.
온 가족이 모두 기독교인데 자신은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하지만 노년에는 기독교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음),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나중엔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 괴로워해. 자기 재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괴로웠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못 견디게 미웠대.
어쩜 좋아...
바로 '무지한 백성들'이었어.
처음엔 풍족하지 않은 그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들은 도대체 왜 사는 걸까 모르겠는 거야.
그런데 말입니다?
비록 형이 보기엔 그들에게 삶의 의미가 별로 없어 보였는데도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부족한 와중에도 나눌 줄 알고, 자신보다 밝게 웃으며 사는 걸 본거야.
'어쩌면 내가 아는 지식이 오히려 나를 억누른 것일지도. 그리고 내가 볼 때 무지해 보이는 그들이 실제로는 지혜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네'
이제 그 형이 왜 다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려 했는지 이해가 가지?
(농사는 쉬운 줄 알아? ㅋㅋㅋ)
오늘의 교훈!!
톨스토이 형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 게 아니라 진짜 땅을 팠다.
사람들을 글로 설득한 게 아니라, 삶으로 설득하려 했다.
형은 여전히 넘사벽이다.
그 형은 그렇게 생각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