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도
캐나다에서 살 때다.
난 20대 중반이었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던 것이건만 실제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돈을 송금하기 위해 하루 13시간씩 강도 높은 막노동을 하며 불법체류자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놓고 돈도 못 받는 임금체불자가 되어놓다 보니 하루에 밥 1끼 배불리 먹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내가 늘 부러워하던 친구들은 바로 한국에서 부모님이 생활비와 학비를 대주고 있던 유학생들이었다.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다니. 나는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100번도 넘게 본 비디오 '러브엑츄얼리'의 대사를 외우다 지쳐 잠드는 게 일상인데... 일하는 중에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 영어로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며(그들은 나에게 욕만 가르쳐주었다), 시간만 좀 더 있다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부러운 사람 한 명이 추가되었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교회 담임 목사님의 아들이 유학을 온 것이다. 나보다 2살이 많은 형이었는데 한국에서 너무 말썽을 부려 (양아치라던데) 기존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고 캐나다로 보내졌단다. 난 첫눈에 알아봤다.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란 것을.
그러나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그 형이 눈에 걸려 캐나다 생존법 몇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기본적인 영어회화와 동네 지리, 유의 사항들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 형 눈빛이 묘했다. 날 노려보면서 하는 말이 "너 왜케 건방지냐?"라는 것이다. 엥? 초면에 저래도 되는 건가? "예. 죄송해요."라고 하며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 헤헤 웃어넘기려 하였다. 뭐가 죄송한 건지, 그리고 그 분위기를 내가 왜 책임져야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그 정도로 넘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정말 바보 같았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 순간, 형은 "내 앞에서 쪼개지마 새끼야"라며 발을 치켜올려 내 배를 찼다. '헉'하며 나는 길바닥을 뒹굴렀다. "열받냐? 쳐. 나 쳐봐! 크크크" 연이은 도발. 그래, 당연히 쳐야지. 죽빵을 날려드려야지. 이건 정당방위다. 내가 선행을 베풀어줬는데 도대체 날 뭘로 알고, 아니, 나한테 열등감 있나?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두 주먹을 불끈지고 일어나 형에게 다가갔다. 감히 해병대를 건드리셨겠다!
그날 이후로 형을 한참 보지 못했다. 난 얼마 뒤 한국으로 돌아왔고, 형은 한국 대형 교회 목사님이 보내주신 돈으로 캐나다에서 학교도 다니고, 용돈도 쓰고, 몇 년을 거기서 더 지냈다(고 들었다). 대단한 인물도 아닌 그를 내가 열렬히 기억할 리도 없었기에 잊고 살았는데, 거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형을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형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캐나다에 살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완전 새사람이 되었고, 이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아, 그러세요?" 길게 얘기할 것도 없고 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인사도 안 하고 뒤돌아 버렸다. 내 시간은 소중하므로 그런 사람에게 1초라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 '밀양'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아들을 살해해놓고도 '하나님께 용서받았노라'고 말하며 평온한 미소를 짓던 살인범이 떠올랐다. 차라리 그런 말을 말지. 그냥 자신만 욕을 먹고 말일이지 왜 하나님을 운운하고 난리인지. 피해자에게 가서 '나는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다. 난 새사람이 되었다.'라고 선언한다. 용서를 구해도 모자란 판국에 빌기는커녕 당당하게 턱을 치켜든다. 상대가 알아줘야만 내면의 변화가 완성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변화를 과거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로부터 단절된 변화가 가능한 일인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가 보다. 용서 구해야할 대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래서 과거를 싹둑 잘라내고 간단하게 'AGAIN'이라 주문을 외우나 보다. 그 어색한 중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찾나 보다. 용서와 치유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선언하는 것임을 모르나 보다.
영화 같은 현실을 겪었다.
내가 겪은 그 일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그런데 오늘도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났다.
그 일은 다음에 써보는 걸로 하자.
안 끝나나 보다. 이런 스토리가.
P.S. 당시에 난 그 형을 때리지 않았다. 난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한국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당장 월세도 내야 했다. 난 그 형을 때리지 못했다. 그저 두 주먹만 불끈 쥔 채로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고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그 형은 더욱 놀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