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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도쿠시마 여행기

1. 자격증의 의미

by 조운생각

목공 자격증 시험을 마치고 나는 쉬어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자유를 만끽해야만 했다.


목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자격증이 필요한가? 아니다. 목수는 실력으로 말하는 직업이지 이론 몇 개 외웠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럼 왜 굳이 목공 자격증을 땄느냐? 그러게. 나도 의문이다. 내가 그걸 왜 했는지. 장장 5개월에 걸쳐 매일 같이 2시간을 통학하며 낮에 배운 것을 밤에 복습해 가며 시험을 준비했다.

‘이게 목수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거 맞나?’라는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다. 동료들 중 상당수가 ‘이건 아니다’면서 불편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장과는 다소 동떨어진 학습이 진행될 때에는 중도 포기하겠다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암튼 대단한 각오를 하고 시작했든, 뭘 잘 모르고 시작했든, 칼을 빼들었으니 배추라도 다듬어보자는 심정으로 다들 끝까지 가긴 갔다. 마음이 잘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끌고 간다는 것은 여간 지치는 일이 아니다. 모두들 머릿속엔 한 가지로 가득했다. ‘시험만 끝나라’


자격증을 따면 어디에 취업을 할지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일단 좀 쉬자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여행!! 거기에 내가 빠지면 서운해서 눈물이 날 테지. 어릴 적 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가족들이 나 빼고 치킨을 먹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순간처럼.

어딜 갈까. 뭘 하면서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오전에는 서핑을 하고

점심땐 낮잠을 자고

오후에는 글을 쓰기에 좋은 장소 어디 없나.

국내보다는 해외로 멀찍이 가버려야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서핑을 위해 발리로 갔었는데 거길 한 번 더 갈까. 아님 호주로 갈까. 아직 한 번도 안 가본 일본은 어떠려나. 오 그래. 당첨. 일본 좋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이참에 일본이랑 친해져야겠다! 오케이~ 가즈아!


어쩌면 내가 취득한 자격증은 목수를 빌미 삼아 방랑벽을 해소하고픈 자유이용권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목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끌렸던 것은 아닐까. 프로젝트가 하나씩 종료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자격증 삼아 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려 하겠지. 글을 쓰겠다는 핑계를 대겠지. 여행작가님들이 부럽다. 누구에게는 핑계가 필요한 작업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아무튼 그렇게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당당하게 구글 지도를 열어 일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난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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