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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도쿠시마 여행기

3. 촌도시

by 조운생각

비행기 탑승하는 길목에 서서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예쁜 승무원 동생이 나에게 노란 쪽지를 건네주었다.

응? 뭐지?

설마…


세관신고서란다.

일본은 원래 VISIT JAPAN WEB이란 온라인상에서 입국신고 및 세관신고를 하는데 도쿠시마는 시골이라 세관신고만 종이로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입국신고는 온라인으로 해야 함;;).


그리고 도쿠시마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서면 atm기기가 한 대 있는데(AEON은행 atm. 수수료가 없어서 여기서 최대한 현금을 뽑는 게 이득이다) 거기서 현찰을 충분히 찾아야 한단다.

시골이라 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이 있다고.


그치만 그 덕에 물가가 비교적 싸고 인구도 좀 적고 목가적인 일본의 정서를 느낄 수 있으니 나한텐 오히려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호텔에 들러 가방을 맡긴 후 도쿠시마 시내에 있는 온천을 가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곳이 정말 촌동네 같은 도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여.. 영어가 하나도 안 통해!’


-버스 정류장이 어디입니까.

-아라타에 온천을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합니까.

-버스 요금은 얼마입니까.


전 세계 어딜 가도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던 나였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다.

번역기를 돌려 일본어로 간단한 질문을 간신히 던졌는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대답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금 번역기 돌려 물어본 것을 뻔히 봐놓고도 일본사람이 일본어 실력 뽐내는 것도 아니고

와다다다지멋떼루다시다 뭐라는 건지…


그래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느냐고요? 물었다.

“버스 번호가 딱히 없고 그냥 기사에게 물어보고 타세요”

허허 참. 그 온천이 어디냐면, 독자 여러분들이여, 구글 지도를 열어서 확인해 보시오. Aratae hot spring(아라타에 온천) 어디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구석에 있는 게 아니라 도심 속에 있는 건데 ‘버스 번호는 모르겠고 기사에게 물어보라’는게 인포메이션이 할 소린가. 나중에 알았지만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몇 대 있으니 아무거나 타되 기사에게 물어보란 소리였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오해가 쌓이고 분노와 피곤도 쌓였다.


도쿠시마 빡씨네. 오늘 잠도 못 자고 여기까지 달러왔.. 아니 날라왔.. 아무튼 왔는데 말도 안 통하고 현금 들고 다니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힘 빡주고 다니는데. 이거 정말 피곤한 본도시구만.


어쩔 수 없이 난 버스 기사에게

“스미마세엥~~~ 아라타에 데스까~~~”

(저기요오~~~~ 아라타에 맞나요~~~)


일본어가 은근 아양 떠는 듯 말을 해야 본토 발음이 나는 것 같더라.

기사 양반이 ‘저 시키가 뭐라는 거야’라는 눈빛을 던지자 다급해진 나는,

조.. 조또 마떼! (잠시만요!)

와따시와… 가.. 간코쿠진 데쓰ㅠㅠ (저 한국사람요 ㅠㅠ)

눈물 그렁맺힌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버스기사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타라고 한다. 버스 앞문으로 올라타려 하자 손을 저으며 뒷문으로 타란다. 아하~ 난 또 말 잘 들으니까 뒤로 탄 다음 다시 버스 앞쪽으로 와서 돈을 내려하자 나중에 내릴 때 내라는 제스처(?)를 하길래 재빨리 알아듣고는

“아라타에 쿠다사이이이~~~~”

(아라타에 부탁드립니다아아아~~~)

하고 앉았다.


어후.. 빡씨다.


내가 일본어를 익히는 게 빠를까,
아님 우리나라가 일본을 점령해서 민족말살정책을 펼치고
한글로 언어를 통일시켜버리는 게 빠를까.


에이 봐줬다. 그냥 조용히 숫자라도 빨리 익히자.

이치, 니, 산…


온천까지는 멀지 않았다.

금방 도착했고 지친 몸과 상한 영혼으로 온천 현관문을 연 순간,

씨익 웃음이 나왔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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