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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류장 Oct 05. 2018

사랑한다면, 당신은

과거와 미래를 잊고 오직 현재

연인 간의 사랑도, 친구와의 사랑도, 심지어 가족과의 사랑도 그렇다.
사랑에 있어서 나는 늘 시작점에 선 기분이 든다.

 

어제도 그제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를 알아왔지만

내가 아는 그는 단지 내가 보는 그의 한 단면일 뿐.

나조차도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른 마당에 상대 역시 그때 그대로일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상대를 관찰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관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로망은 참 오래되어왔다.

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사랑을 고백하는 것부터, 자물쇠에 연인과 나의 이름을 써넣는다.

<알쓸신잡>에서 이 주제에 대해 잠깐 이야기가 나왔을 적에,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도 불안정하고, 자아도 불안정하잖아요? 불안정하니까 안정되어 보이는 곳에 새기는 거죠.

안정되면 그걸 왜 새기겠어요. 바위처럼 단단하면. 자아를 표상할 수 없으니 안정된 곳에 새기는 겁니다"




순서대로 영화 <에브리데이>, <뷰티인사이드>,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한 장면.



한창 화제가 되었던 영화 <뷰티인사이드>, 미국 틴에이지버전인 <에버리데이>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뷰티인사이드>까지. 

겉모습이 변하는 상대를 두고도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이제 진부할 법도 한데,

언제나처럼 잘 나간다. 

내가 늙더라도, 아프더라도, 혹여 겉모습이 통째로 변할지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변치 않았으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에도 닿아있는 걸까. 


이는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하기 쉬운 겉모습만큼이나, 우리의 마음 역시 변하기 쉽다는 것을.

인류 역사상 평생 사랑하겠다는 다짐보다 더 많이 약속된 것이 있을까. 


길거리의 연애 타로점이 그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도,

결혼 전 신랑신부의 궁합을 따져보아야겠다는 그 심리도, 

모두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변하는 세월과, 변하는 사람과,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작게나마 확신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이러다가 언제 또 변할 지 몰라."

내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의 감정조차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어떤 두려움이 종종 나를 괴롭혔다. 

연애를 할 때면 상당히 길게 하는 편이었고, 그 때문에 오히려 관계의 허무함을 더 많이 생각했다. 

한때는 뜨거웠던, 지금은 끝나버린 그 수많은 약속들은 

전부 깊은 기억의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을 뿐이다.


끝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언제 죽게될 지 한 치 앞을 모르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처럼. 



Memento mori. Carpe diem.



끝을 모른다는 점은 현재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속상한 대화를 나누고선 하루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고 나서 갑자기 다음날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난다면?

새파랗게 질려 끝없이 자책하고 후회와 절망에 젖어 살 나의 인생이 머릿 속에 재생되는 것이다.

더 끔찍한 상상에 빠지기 전에 서둘러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안심이 된다. 

(얼마 전 어머니와의 짧은 말다툼 뒤에도 이랬다.)


그래선지 여태껏 연애나 다른 사랑하는 관계들에 있어서 괜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해 싸워본 적은 많지 않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차이, 예를 들면 정치나 사회문제 같은 것, 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이 대립될 때 끝없는 논쟁과 그 날카로운 공격의 말로부터 이어진 감정 싸움이 그나마 손꼽을 수 있는 큰 전쟁이다. 






요즘 내가 선택한 방식은 이렇다.

나중에 벌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들을 미리 데려다가 걱정하지 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것에 충실하기.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신께 기도하며, 미래는 신의 손에 믿고 맡겨버리기.

기도하지 않으면 흔들리는 약한 믿음이지만 신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주는 용기는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는 확신과 평화를 준다. 


우리는 마음껏 사랑할 자유가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이미 가버린 과거에 대해서도 더이상 생각하지말고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 사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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