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연이가 4시에 오기로 했는데 아직 안 와서요. 혹시 어머니께서 아시나 해서 여쭙니다"
수업 중이라 엄마에게 문자로 보냈다.
"제가 좀 전에 올려 보냈는데요?"
문자가 왔다.
"언제 내려주셨어요?""
"...."
답이 없다.
마침 다른 학생이 수업받고 있어 마냥 문자를 기다리며 주고받기 힘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통화할 수 없는 번호라고 안내한다. 그럴 리가? 문자 했는데? 혹시 몰라서 다시 또 통화를 시도!
같은 상황이다.
내 전화기를 의심하며 수업받는 아이에게 내가 전화 걸어 볼 테니 신호 오냐고 확인해보라 했다.
어~ 제대로 된다.
그럼 뭐가 문제지?
다시 엄마에게 문자를 했다
" 제가 어머니 번호로 전화를 걸 수가 없네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통화가 안돼요"
좀 시간이 흐른 뒤
"저도 선생님 번호로 전화가 안돼요"
거 참 왜 엄마한테만 안되나?
"제가 수업 중이라. 원인 찾기가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오늘 가연이 아무래도 수업 안 가겠네요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렇게 그날 문자로만 몇 번 주고받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치열교정으로 빠진다거나 몸이 아파 가끔 빠지긴 했지만 이유도 못 듣고 오늘은 가연이가 수업을 못 오겠구나 라는 실망감과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오는 것도 잠깐 왜 통화는 안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전화기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에이 오래돼서 A/S 맡겨야 되나? 이 참에 바꿔야지...'
하면서 가연이가 수학 공부하기가 그렇게 싫었나? 하며 갸우뚱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중1 말에 다른 학원을 다니다가 도대체 못 알아듣겠다며 어머니가 소개받아 데리고 오셨다. 마침 공부방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나는 성심성의껏 가연이를 가르쳤다.
아이도 잘 따라줬고 비교적 잘 이해하고 숙제도 잘 해왔고 잘 모르는 것 같은 개념은 다시 설명해 주면 잘 이해하는 듯했다.
물론 과묵하고 말 수도 없어서 이해했다 못했다를 잘 표현하지 않아 내가 눈치껏 다시 설명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데 신경을 좀 썼다. 그리고 영어학원 다니며 영어 학원에서 있었던 일도 조금씩 말하더니 공부에 자신감이 생긴 듯 논술 학원도 신청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 3개월 지났을까? 갑자기 가끔 안 나오는 날이 생겼다.
여학생들인 경우 매월 주기적인 일 때문에 힘들어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그 당시 그랬던 기억이 있어 그럴 때 오면 적당히 배운 것만 잊지 않게끔 만들어서 보내거나, 합의하게 빠지게 되면 컨디션 좋을 때 보충해 주거나 하는데 가연이가 거의 주기적으로 매달 한 번씩 연락도 없이 빠지기 시작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봐야 그때서야 몸이 안 좋아서... 그러더니 어느 날은 내 문자에 답도 없었고... 그다음에는 엄마에게 했더니 엄마가 몸이 안 좋다고 말을 대신 전해주는 경우가 몇 번 반복되었다.
그러더니 결국 오늘 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날 수업이 마무리된 늦은 시간에 엄마에게서 통화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다.
'통화가 되나? 아까 안되었는데...'
"네에..."
문자를 보냈다.
전화가 바로 왔다.
"얘가 선생님 번호를 차단해 놔서 통화가 안된 거였어요!"
아까 전화가 안된 것이 내 오래된 핸드폰의 문제가 아니라 번호 차단이라고?
나도 이상한 사람이 자꾸 전화해서 그 번호를 차단한 적이 있다.
그걸 써먹었다니... 갑자기 기운이 쫙 빠지는 이 느낌은 뭐지?
"죄송해요. 얘가 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혼 좀 나야지 되는데... 좀 쉬게 할게요"
"네에 어머니 좀 쉬는 게 나을 듯 하긴 하네요. 아무래도 맘이 동해야 공부도 되니까요"
가연이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마무리했다.
허탈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가연이와 수업을 했건만 어느 정도 잘 받아주는 듯했는데 그리고 아이도 편안해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난 중학생 아이들의 방황하는 마음을 읽고 있노라면 참 딱할 때가 많다. 자기도 주체 못 하는 우울감과 또 갑자기 밀려오는 흥분을 주체 못 하는 그 시기에 요즘 아이들은 딱히 풀 곳이 없다. 집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님과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부모님은 잔소리하는 사람일 뿐 자신의 감정에 공감 못하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많은 가 보다. 그렇게 아이들의 정서가 불안해져가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다. 가연이 어머니도 가연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신경을 쓰고 계신다. 그런데 아이는 그걸 읽어주지 않는다. 신경써주기를 바라는 면과 부모가 신경 써주는 부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고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노력이 잘 안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먼저 인정해주고 마음으로 공감해주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어른들도 연습이 부족하다 보니 부모로서 해야 할 공감 연습이 안 돼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렇게 가연이는 좀 쉬었다가 다시 왔다.
그리곤 1년 넘게 잘 다니다가 증세가 더 심해졌다.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되었다. 다음날이 수학시험인데 시험 끝나자마자 오라고 했는데 안 온다.
시험기간이라 일찍 끝났을 텐데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했더니 엄마도 전화를 안 받는다.
문자를 보내니 엄마가 한참 있다가 저녁에 문자를 보내셨다.
"얘가 또 시작이네요 죄송해요 안 갈 거 같아요"
예전엔 아파서 아니면 어디 가서 등등 이유를 알려줬는데 이번엔 이유도 안 알려주신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기간이 끝났다. 그냥 며칠을 연락하지 않고 두었다가 문자를 보냈다.
"가연이가 수학 교과서를 두고 가서 학원 안 오더라도 교과서는 가져가야 할 텐데요"
엄마도 답이 없고 가연이도 답이 없었다.
이젠 내 손을 떠난 듯 한 느낌이라 답이 없어도 그냥 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가연이가 공부방에 왔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속으로 좀 놀랐다.
"교과서 가지러 왔어? 시험은 잘 봤어?"
"저 시험 안 봤어요 모르셨어요?"
"아니 몰랐는데..."
"엄마가 말 안 했나 보네요... 시험 안 봤어요. 학교도 안 갔어요. "
잠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멈칫하다가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가연이는
"아니요... 그리고 이제 아빠가 화나서 다 끊어 버리신대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방학 때는 오겠지 했는데 방학도 지나고 이제 3학년 중간고사 겸 성적처리를 위한 마지막 지필고사가 2주 후인데 연락이 없다.
중3 1학기 중간고사까지는 잘 버텼는데 이 고비를 못 넘기고 가연이한테 쏟은 공도 없이 중3 수학 성적은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성적이 아깝다기보다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학생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너 나중에 애 낳으면 내가 다 적어놨다가 알려줄 거다
네 엄마가 이렇게 빠지고 저렇게 빠진 사례들... 정말 엽기 아니냐?
내가 읊어 볼게...."
그렇게 얘기를 하면 가연이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좀 마음의 빗장이 풀렸나 싶어서
"혹시 안 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잠깐 들려서 오늘 너무 힘들게 왔다고 얘기해주기만이라도 해줘라 그럼 조금만 시키고 보내줄게. 가연아 이해도 잘하고 문제도 잘 푸니 네 맘 잡는 일만 남았거든... 힘들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